<오스트리아 후기>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선호하는
비엔나 날씨는 '비 온 뒤 갠' 날씨인데요.
이때가 가장 공기가 신선하고 가볍고
여름이라 시원하게까지 만들어주니
왠지 모를 상쾌함으로 어딘가 돌아다니기에
가장 최적화된 온도 및 날씨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오늘 가 볼 장소는 바로
비엔나를 대표하는 산인 '칼렌베르크(Kahlenberg)',
칼렌산인데요. 위 사진처럼
'하일리겐슈타트역'에서
버스로 산을 타고 올라가
'칼렌베르크 역'에서 하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도 될 겸 두발로도
등산하지만은 경사에 시간상 제약도
있으므로 저는 등산 대신 버스로 올라왔습니다.
약 해발고도 484m의 칼렌베르크는
알프스 산맥의 일부인
'비너발트 산맥 (Gebirge Wienerwald)'에
포함되는 산중에 하나인데요. 빈에서
약 12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고도 측면에서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빈을 대표하는
산으로 3가지 이유에서 늘 선정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칼렌산이 다른 산에 비해 가장
등산하기 편하고 여러 편의시설들이
잘 돼있기 때문인데요. 위 사진처럼
산 정상에 저런 전망대도 해놓았습니다.
여름이면 관광객뿐만 아니라 비엔나 시민들도
가장 먼저 찾는 장소 중에 하나이지요.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이유는 이 산을
하산하면서 차차 알게 됩니다.
이 전망대를 마주 보고 있는 성당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요세프성당'입니다.
17세기 초반에 지어진 이 성당은
오스만 튀르크에 침공으로 한번 무너졌지만
18세기에 재 완공이 되었지요. 오스만 튀르크
침공을 함께 막아준 폴란드를 기념하기 위해
이 성당은 현재까지 폴란드
신부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성당 앞에 조그마한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에 연인들이 자물쇠를
달아놓으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영원해진다'는 별 꼴값을 다 떠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우물에 자물쇠를
다는 행위는 튀르크 침공을 함께 막아낸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연합군의
결속을 위해 자물쇠를 처음 달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칼렌산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가보면,
커피집 외에도 관광 학교도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시설들을 지나가면 이 산의
내리막이 시작됩니다. 뭐 더 이상 정상에서
볼 일은 없으니 우리도 하산해 보도록 합시다.
칼렌베르크 대부분은 참나무로
우거져 있는데요. 비 오고 난 뒤라서 그런지
참나무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참고로 칼렌산은 16세기까지 멧돼지들이
많이 서식한 탓에 '돼지산(Schweinsberg)'으로
불렸으나 17세기 말 황제 '레오폴드
1세 (Leopold I)'에게 이 산이 헌정되어
'레오폴드산(Leopoldsberg)'으로 부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산과 바로 인접돼있는 산도
황제에게 헌정되어 똑같이 '레오폴드산'으로
부르면 이름이 중복되니 본인이 지은 예배당이
있는 산 명칭을 본떠서 '칼렌베르크'로
불리게 되지요. 원래 '칼렌베르크'를 직역을 하면
'민둥산'이 되는데 나무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 당시 사람이 살지 않으니
허허벌판과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17세기 오스만 튀르크 침공에
방패막이 역할을 한 칼렌베르크는
하산하면서 왜 이 산이 유독 유명한지에 대한
'두 번째' 이유가 밝혀지는데요.
바로 '와인 포도 재배지'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내려오면서 옆을 보면 위 사진처럼
포도밭이 곳곳에 펼쳐 저 있지요.
이로 인해 전 세계 수도에서 유일하게
가장 많은 포도주 전용 포도를
재배하는 도시로 비엔나가 뽑힙니다.
참나무 향기에 포도향까지 더해져서
코가 즐겁네요 ㅎㅎ
이렇게 넋 놓고 계속 하산하다가
왼쪽을 봐주면
부쉔샹크(Buschenschank)집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덤불술집'인데요
오스트리아 전통 술집의 형태 중에 하나로
개인이 직접 재배하는 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대표 품종으로 판매하는 술집입니다.
보통 저렇게 칼렌베르크의 절경과
포도밭에 에워싸여 벤치에 앉아
포도주를 즐기는데요.
바로 본인들이 재배한 포도즙을 발효시켜
화이트 와인을 직접 만들어 판다고 하니
참으로 기똥차네요 ㅎㅎ
뭐 술에는 관심 없으니
빠져나와 다시 하산길로 접어듭시다.
그리고 계속해서 넋 놓고 길을 내려갑니다.
하산하다 보면 옆에 가끔씩 위 사진처럼
오스트리아 전통 술집 및 음식점인
'호이리거(Heuriger)'가 나옵니다.
호이리거도 지나고 나면
점점 내리막의 마지막이 보이는데요.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하일리겐슈타트 마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왜 이 칼렌베르크가
유명한지에 대한 '세 번째'이유가
이 마을을 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러면 칼렌베르크 내리막길과 이어진
마을로 들어서서 계속 지나가 봅시다.
지나가다가 왼편으로 꺾어서 들어가 주면
아담한 골목이 하나 나옵니다.
그리고 이 골목 전방에는 칼렌베르크를
빛내어주는 무언가가 위치해있는데
바로 '베토벤 생가'가 나옵니다.
베토벤이 살아생전 가장 사랑했던 산이
'칼렌베르크'로 우리가 지금 내려왔던
내리막길이 베토벤의 최애 산책로였습니다.
19세기 초반에 베토벤이 살았던
이 집은 현재 '베토벤 기념 및 박물관'으로
운영되는데요.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면 비극적인 장소 중에 하나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오가며 음악가 생활을
하였던 베토벤은 발진티푸스를 얻어
이 바이러스가 뇌로 침범하여 청력을 잃게 되고,
이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와 고통에 시달렸던
베토벤은 위암까지 얻게 됩니다. 위암으로
복통이 심했던 베토벤은 하일겐슈타트라는
마을이 당시 온천으로도 유명하자 복통을
진정시키고자 본인의 담당의사였던
슈미트 선생의 말을 듣고 이 집에 살게 되지요.
그러나 청력상실과 복통은 나날이 심해지고
이로 인해 베토벤의 정신세계 또한 피폐해지기
시작하는데요. 베토벤이 31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형제들인 칼과 요한에게 절망 속에
편지를 씁니다. 편지 내용에는 복통과 청력상실로
음악가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인한 대인기피증 그리고
이러한 고통과 사회적 고립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글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비록 동봉까지 하였지만 베토벤은 이 편지를
형제들에게 보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이
죽고 난 1827년에야 비로소 이 편지가 이 집에서
발견되는데요. 편지 중 유산에 대한 언급도
있었던 점을 비롯하여 '유언장'으로 불리게 되고
이 생가 또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장의 생가
(Haus des Heiligenstädter Testaments)'로
불리게 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유서 외에도 여러
베토벤에 관련된 기념품들이 많으니
베토벤이 사랑했던 칼렌베르크를 먼저 보고
내려오면서 이 박물관 또한 방문하는 것이
산책로를 더욱 실감 나게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마치며..
내리막길 기준으로 넉넉잡고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칼렌베르크를 만끽하며 내려올 수 있는데요.
단지 산책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있기는 하지만은 길 포장이 잘되어있어
자전거 타며 등산을 해보는 것도 운동에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칼렌베르크는 참고로 포도밭과 나무들이
단풍지는 가을이 또한 장관인데요.
푸르른 여름과 상반되는 아름다움을
가을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외에도 오스트리아 전통 술집인
'부쉔샹크, 호이리거'도 위치해 있으니
산책하다 휴식 겸 들려보는 것도
여러모로 추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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