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문학 썸네일형 리스트형 <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문학사 -4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 이후로 오스트리아의 문학은 저명한 문호들의 망명으로 깊은 침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당시의 오스트리아는 패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문학을 비롯하여 미술과 음악에서도 인재들의 국외 유출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술 전반에서 공백기에 봉착한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주도한 유럽의 복구 및 반공산화 계획인 일명 '마셜 플랜 (Marshall Plan)'으로 국가가 큰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이에 예술분야 역시 점차 활기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나치당의 핍박으로 망명을 떠났던 유대인계 문호와 비 독어권 문예인들이 오스트리아로 귀환하면서 문학의 공백기를 메우는데, 오스트리아 정부 역시 이들에게 동조하여 나치당의 의하여 폐기 처분된 문학들을 복.. 더보기 <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문학사 -3부- 1914년 합스부르크 황실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조직단의 의해서 암살당한 후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알리며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문호들은 전쟁을 옹호하고 조국을 위한 글들을 기고하라면서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압박을 당합니다. 대부분의 작가 및 소설가들은 유명세에 따라서 본인의 운명이 결정되었는데요. 이름이 알려진 문호 같은 경우 관청이나 사령 본부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일으킨 1차 세계 대전을 국민들 상대로 정당화 및 합리화시키는 글들을 작성하는 반면에 무명의 작가들은 징병되어 전쟁터 최전방으로 끌려가 총알받이로 희생당합니다. 아무리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이런 선전 활동에 강제성을 부여하였다 할지라도 상당수의 문호들은 당국의 불만과 불평이 .. 더보기 <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문학사 -2부- 인간 중심의 사고를 뒷받침으로 발전한 인본주의와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이 펼친 계몽주의적 정책으로 18세기까지 오스트리아 문학에 행해졌던 엄격한 검열이 사라지면서 오스트리아의 문학도들은 국가와 종교의 규율로부터 벗어나 세속적이고 자주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19세기 독일을 포함하고 전 독어권 문학을 대표하였던 '낭만주의(Romantik)'는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내에서 유일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데요. 이는 독일식 문화와 정서라는 명목 아래에서 오스트리아의 예술인들과 문학도들이 배타적인 성향을 보였고 낭만주의를 대신하여 정형화된 예술적 형태를 지향하는 오스트리아식 '고전주의(Klassizismus)'와 더불어 '비더마이어(Biedermeier) 양식'이 오스트리아 예술인들로부터 각광을 받.. 더보기 <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문학사 -1부- 본격적으로 오스트리아 문학의 대한 연구는 한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와 문학도들은 이전까지 오스트리아의 문학은 단지 독일 문학의 하위 부류로만 여겨졌던 현실에서 "과연 오스트리아만의 특별함은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독일과 '동일한 언어, 공통된 역사, 유사한 문화'를 가진 유일한 국가인 오스트리아는 독일과는 반대로 '다민족' 국가였는데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이 다스렸던 지역은 전체 동유럽의 절반 이상이었고 심지어 한때 헝가리와 제국을 공유하는 이중 국가체제였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언어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다민족이기는 하였으나 독일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합스부르크 같은 경우 윗 나라 독일과의 문화적 교류가 본인들이 다스리는 여타 동유럽..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