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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부르겐란트 주

<오스트리아 정보>

전체 9개의 '연방주(Bundesländer)'가 구성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 '르겐란트(Burgenland)' 연방주는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의 서북부 지방과 경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나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를 맞대고 있는 경계선이 대략 400km에 준하는데 이는 전체 유럽에서도 상당히 긴 편에 속하고 오스트리아 전체에서 역시 가장 긴 경계선인데요. 이에 걸맞게 출입국을 통한 유동인구수 역시 여타 오스트리아 연방주보다 높습니다. 면적 397km²의 일곱 번째로 넓은 부르겐란트 주는 총인구수 또한 3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관계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적은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구수와 면적 기준으로 열세에 속하지만 다른 연방주와 마찬가지로 문화 및 경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역사

 

 

부르겐란트 연방주는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유서 깊은 지역으로 선정될 만큼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기원전 400년부터 켈트족이 머물렀으나 본격적인 지역화가 이루어진 시점은  로마 제국의 파노니아(Pannonia)란 속주(屬州)에 편입된 기원전 15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주에 대한 로마 제국의 지배가 끝난 4세기 후반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고트족과 이란/터키 계열의 훈족이 침공하면서 다민족 지역으로 부르겐란트는 거듭납니다. 카를 대제의 영토 확장으로 8세기에는 프랑켄 왕국 지배하에 들어섰으나 이어진 슬라브 민족과 헝가리 미자르 민족의 습격으로 정세가 헝가리로 넘어갑니다. 참고로 '부르겐란트'란 명칭을 직역하면 '요새 및 성의 땅'이란 의미인데 여기서 말하는 요새와 성은 과거 헝가리 왕국의 지배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기인되었습니다. 헝가리 미자르 민족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이 동남부 독일 지역인 바이에른 공국에까지 미치지만 프랑켄 왕국의 오토 대제가 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자 헝가리 지배령인 부르겐란트에서 바이에른 공국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면서 부르겐란트는 저절로 헝가리어와 독일어를 공용하게 되지요. 아무리 바이에른 공국의 세력이 확대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헝가리 왕국 출신의 봉주들이 부르겐란트를 실질적으로 통치하였기에 헝기라령으로 분류되었는데요. 연방주의 문양 역시 15세기 당시 헝가리 왕국의 대봉주였던 마터스도르프-포르헨슈타인 공작 가문을 나타내었던 독수리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16세기 초반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부르겐란트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유독 정세가 불안정하였던 부르겐란트였기에 오스트리아 전역을 통일한 합스부르크 황실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속적인 전투를 부르겐란트와 펼칩니다만 중간에 오스만 튀크르 제국과 합스부르크를 반대하였던 헝가리 반군과의 대규모 전투로 고난을 겪은 후 16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헝가리의 왕정을 이어받고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부르겐란트는 별 탈 없이 헝가리 왕국의 통치령으로 수세기 동안 자리매김합니다.

부르겐란트 주 (붉은색), 주 문양 (우)

19세기 중·후반 독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대패를 한 합스부르크 황실은 본인들의 세력이 약해지니 헝가리 왕국과 불필요한 전투를 면하고 방지하기 위한 우호조약의 명목으로 헝가리 왕국과 권력의 평준화(Ausgleich)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부르겐란트에 거주하고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독일어를 사용하였던 오스트리아인들을 대상으로 헝가리 왕국으로 사상 및 문화적 교화를 시도하는데 이는 부르겐란트에서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였던 주민들의 지역 이탈로 이어지고 독일어는 듣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초반 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 체제는 붕괴되면서 이 당시 부르겐란트 연방주를 오스트리아로 편입시켜야 할지 아니면 계속 헝가리에 존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격화됩니다. 이도 저도 못하는 부르겐란트 지역 대부분의 주민들은 과거 헝가리 왕국의 강제 교화 정책에 불만이 있었던지라 오스트리아에 편입되기를 바려면서 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과 협의를 통하여 오스트리아령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온전히는 불가능하였는데 한때 부르겐란트에 속하였던 외덴부르크라는 대도시는 과반수 이상이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교화 정책에 수긍한지라 편입에 반대하며 헝가리령에 남아있게 되지요. 2차 세계 대전 이후 부르겐란트는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하나의 연방주로 격상되고 과거 부르겐란트를 대표하였던 외덴부르크가 헝가리에 존속되자 재차로 대표 도시를 아이젠슈타트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아이젠슈타트가 연방주의 주도()로 자리매김합니다. 

  지리 & 경제

 

 

넓이가 아니라 마치 장대처럼 길게 뻗어있는 부르겐란트 연방주는 동쪽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서쪽으로 니더외스터라이히 및 슈타이어마르크 연방주를 이웃 지역으로 두고 있습니다. 연방주의 대부분에 중남 유럽에 위치하여 알프스와 발칸 산맥이 둘러싸고 있는 방대한 판노니아 평원이 펼쳐져 있는데요. 이런 이유에서 지중해성 온대 기후에 속하는 일리리아 기후성을 부르겐란트는 보이는데 여름에 강수량이 많지만 무더위는 거의 없고 겨울에는 눈보다 안개와 다습한 중·저온 날씨가 특징입니다. 그러나 여타 연방주들 보다 연중 평균으로 해가 가장 길게 떠있고 자주 목격되기에 '햇빛의 땅'이란 별칭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르겐란트는 '부 부르겐란트(Nordburgenland)'를 시작으로 '부 부르겐란트(Mittelburgenland)'와 '부 부르겐란트 (Südburgenland)'로 총 3개의 행정 지구로 분류되어 있고 13개의 중견 및 대도시가 연방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북부 부르겐란트 같은 경우 지역 특색으로 다른 행정 지구와 비교 시 평원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주도 아이젠슈타트를 비롯한 오스트리아에서 제일 넓은 호수인 노이지들러 호수 역시 이 지역에 포함됩니다. 중부 지역은 북부와 얼추 비슷하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이어주는 코젝 산맥과 사화산으로 인한 지리적 돌출부가 있다는 점이 북부 지역과 서로 상이되지요. 마지막 남부 부르겐란트는 상당 부분이 언덕진 구릉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라압이라는 긴 강물이 흐르기에 여름철 강우량이 높아지면 지역의 강수가 라압강으로 흘러 들어간 후 이어서 도나우 강으로 빠져나가기에 자연적인 배수 시설이 갖춰진 지역이기도 합니다.

판노니아 평원 (좌), 부르겐란트 풍력발전기 (우)

무엇보다도 부르겐란트 연방주는 광대한 평원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양지로서 농경 산업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북부와 중부 부르겐란트 지역에 펼쳐진 1만 3천 헥타르가 넘는 평원에서 다양한 채소를 비롯하여 와인 전문 포도가 주로 재배되는데 여기서 재배되는 포도는 전 오스트리아에서 양질 부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있습니다. 넓은 평원을 이용한 대체 에너지 산업이 눈에 띄는데 전 유럽에서 부르겐란트는 특히 풍력 발전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전체 연방주의 약 50% 가까이를 풍력 발전을 통한 전력 공급이 이루어질 만큼 수많은 풍력발전기 역시 보유하고 있는데요. 연방주 지역 내 총생산의 3분의 1을 대체 에너지 산업이 부담할 정도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앞세운 대체에너지 산업이 지역 경제의 주축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소모한 전력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100% 재생산이 가능한 부르겐란트는 여타 연방주와 유럽 국가에 반하여 원자력 및 화력발전 의존도가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전력 수급은 그 어떠한 지역보다 원활하기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형적인 형태를 나타냅니다. 친환경 대체 에너지 산업의 모범과 표준이 되는 부르겐란트는 그러나 산업 구조의 다양성 부족 및 고수입을 창출하는 제조와 첨단 산업의 결여로 그 어떠한 연방주들에 비하여 경제력이 약합니다. 심지어 1990년대에는 저조한 경제력으로 유럽 내에서 개발도상지역으로 선정되어 유럽 연합으로부터 금전적 부조를 받았는데요. 대체 에너지 산업에 이어서 채광 산업과 자연경관을 이용한 관광 산업이 어느 정도 경제를 뒷받침하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영향이 여전히 미미하고 이들 역시 다른 연방주와 비교 시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현재까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안타깝지만 오스트리아 뿐 아니라 서유럽 국가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회 & 문화

 

 

부르겐란트 연방주는 오스트리아에서 알아주는 진보 성향을 띄는 지역입니다. 6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좌파 정당인 사회당(SPÖ)이 주의 행정을 이끌고 있기에 그 어떠한 지역보다 시민들의 사회당에 대한 충성도 및 신뢰도가 가장 높게 평가됩니다. 부르겐란트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방이었기 때문에 60-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주민수가 전국을 통틀어 제일 높은데 이중 미국 북동부 대도시 시카고로 이주를 간 이민자가 가장 많습니다. 여타 연방주에 비해서 다민족성이 농후하게 나타나는 지역이기도 한데 전체 주민의 80%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인이고 나머지 20%는 크로아티아, 헝가리 그리고 슬로바키아 출신의 주민들이 소수 민족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헝가리어와 크로아티아어는 빈번히 대중 시설에서 독일어와 함께 병행 표기되고 헝가리 요리 문화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생선과 거위를 재료로 사용한 음식들이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발전하였지요. 대체에너지 산업과 더불어 부르겐란트는 자연보호 및 보전에 가장 힘을 쓰는 지역인데 여타 연방주와는 달리 엄격하고 세분화된 관리체제로 수십 개에 달하는 장소가 현재 천연 보호구역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이지들러 호수 (좌), 아이젠슈타트의 하이든 성당  (우)

다채로운 여가생활을 위한 문화 행사들이 매년 부르겐란트에서 거행되는데 국제 로켄하우스 챔버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약 20만 명을 한 번에 수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세계적인 락 페스티벌인 노바록 역시 부르겐란트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다양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연방주이기에 크로아티아와 헝가리의 민속 체험을 다루는 행사 또한 지역 문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지요. 이 무엇보다도 부르겐란트를 이끄는 핵심 문화재는 두 가지로 일축되는데 하나는 '이지들러 호수 (Neusiedler See)'로 다른 하나는 주도인 '이젠슈타트(Eisenstadt)'로 볼 수 있습니다. 노이지들러 호수는 사면이 육지로 되어있는 오스트리아에서 '비엔나 사람들을 위한 바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방대한 면적을 지니고 있는데요. 약 300 km²에 육박하는 면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넓고 유럽에서도 네 번째로 큰 호수입니다. 30종이 넘는 물고기가 서식하고 염분 또한 수중에 포함되어 있기에 자연 정화가 가능한 노이지들러 호수는 매년 오스트리아 동부 지역 주민들에게 여름에 핫플레이스로 매년 선정되지요. 주도 아이젠슈타트 역시 부르겐란트 문화의 핵심 축으로 여겨지는데 과거 헝가리 왕가의 군주였던 '에스터하지(Esterhazy)'라는 명칭의 헝가리 귀족 가문에서 교향곡의 대부로 알려진 작곡가 하이든이 약 40년간 군주 가문의 전속 음악가로 활동하였기에 '에스터하지 궁전(Schloss Esterhazy)'과 함께 '하이든 성당(Haydnkirche)'이 도시의 상징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타 연방주와의 문화·관광 경쟁력에서 부르겐란트는 열세에 놓여 있는데, 오스트리아 중·서부 지역에 포진된 알프스 산맥도 없고 겨울 온도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기에 스키를 비롯한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 역부족인 데다가 여름에는 빈과 니더외스터라이히 연방주에 반하여 딱히 눈에 띌 만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기에 관광 수입 현황이 그렇게 고무적이지만은 않습니다. 

 

2021.09.07 - [오스트리아 일상기/장소리뷰] - <오스트리아 후기> Neusiedler See / 노이지들러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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