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총 9개의 '주(Bundesländer)'들 가운데 약 19.000km²가 넘는 면적으로 지리상 가장 넓은 주인 '니더외스터리히(Niederösterreich)'에 관해서 기본적으로 알아보도록 합시다. 수도 빈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수인 169만명을 보유한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수도 빈을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으로 체코, 동쪽으로 슬로바키아를 경계로 두고 있기에 여타 동유럽 국가와의 경제와 문화에서 상호보완적 역할을 크게 담당하고 있습니다.
역사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지금으로부터 약 6만년전인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처음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2300년 전의 시대인 고전시대에 들어서자 켈트족, 로마인, 게르만족, 슬라브족 등의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다인종 지역으로 거듭니다. 다인종 지역이다 보니 언어와 종교 전반에 걸친 문화 충돌이 빈번하였지만 로마인들이 본인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다른 인종들의 영토를 탈환하면서 이 지역을 로마령으로 귀속시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9세기경 게르만 인종 출신인 프랑크족의 카롤루스 일족이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이 지역을 통솔하게 되지만 10세기에 들어서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선조인 바벤베르크 왕가가 새롭게 점령합니다. 바벤베르크 왕가는 이전까지 독일 바이에른 공작령에 존속되어 있었던 왕족이어있지만 10세기 말부터 분리되어 현재 오스트리아 전 지역을 점령한 계기로 자주적인 영토로 개척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12세기로 접어들면서 바벤베르크 왕가는 바이에른 공작령으로부터 이전까지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지원을 완벽하게 청산하면서 온전히 독립하는데 성공하고 이에 바벤베르크 왕가는 바이에른 공작령과 동일하게 공작령의 위치로 격상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바벤베르크 공작령은 '고지 지역'과 '저지 지역'이란 두 개의 지역으로 분리되어 통솔되었습니다. 바벤베르크 공작령이란 명칭 대신에 독일어로 '동쪽 제국'이란 의미인 '외스터라이히 (Österreich)'란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면서 분리된 두 개의 지역 역시 새로운 지명을 얻게 되지요. 윗동네라는 이름의 고지 지역은 고지(Ober-)라는 단어와 동쪽 제국 (Österreich)이 합쳐지면서 고지 동쪽 제국 이란 뜻에서 '오버외스터라이히 (Oberösterreich)'란 지명으로 불리게 되고 이와 마찬가지로 아랫동네이었던 저지 지역은 저지 동쪽 제국이란 의미를 지닌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가 탄생합니다. 13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귀족 가문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건국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를 배출해내면서 현재 오스트리아의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수도 빈과 더불어 정치와 지리적인 면에서 견고한 위치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16세기 합스부르크 황실이 현 체코인 보헤미아와 헝가리 왕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로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이들의 행정부로 부상합니다. 현재 니더외스터라이히 문양에서 보이는 다섯 마리의 독수리들은 '오버외스터라이히'에 더해서 한때 독립적인 공국으로 활동하였던 '슈타이어마크', '케른튼', '크라인', '슬로베니아'가 합스부르크 황실로 귀속된 것을 기념하고 상징합니다. 합스부르크 황실이 다스렸던 영토가 넓었던 터라 이에 복수심에 불타던 피지배 국가들은 여러 번 봉기를 일으키는데, 대표적으로 15세기 헝가리 코르비누스 왕이 이끄는 헝가리군이 반란을 일으키며 합스부르크에 침공을 가하자 빈과 마찬가지로 니더외스터라이히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여기에 더해서 16세기는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서 발생한 30년 전쟁으로 인적 및 경제적인 손실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고 스웨덴 왕국과 오스만 튀르크 또한 쳐들어왔기에 니더외스터리아히는 17세기까지 다방면에서 극도의 암흑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18세기 초반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바로크 양식이 성행하는데 수도원과 합스부르크 황실의 궁전이 본격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니더외스터라이히 지역은 문화적이나 경제적으로 크게 부흥합니다. 바로 이어서 19세기 초·중반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전역에서 산업화가 추진되고 철도와 공장이 빈과 니더외스터라이히 지역을 가로지르는 산맥인 '비너발트 산맥' 중심으로 지어지기 시작하지요. 빈과 더불어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경제와 군사 핵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여기에 문화 경쟁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당시 동유럽 국가들에게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예술 분야에서 대표 유학지로 부상합니다. 그러면서 20세기 초반 발발한 세계 1차 대전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이 붕괴되면서 니더외스터라이히 지역은 수도 빈에게 정치·행정권을 온전히 양도하고 오스트리아가 공화제를 선포한 계기로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9개의 주들 중 하나로 거듭납니다.
지리 & 경제
대표 도시인 '쌍크트푈텐(St. Pölten)'을 필두로 총 76개의 크고 작은 도시로 이루어진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온천수가 흐르는 수로의 따라서 핵심 지역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중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경제적 중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도시는 주도(主都)인 쌍크트푈텐가 아닌 소도시인 '뫼들링(Mödling)'과 '바덴바이빈(Baden bei Wien)'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소도시가 뇌더외스터라이히 주 예산의 약 10%가 넘는 세금을 부담하고 있기에 명목만 쌍크트푈텐이 주도이지만 실세는 이 두 소도시가 지니고 있다 하여도 무방합니다. 지리 특성상 '동알프스'라고도 불리는 비너발트 산맥이 수도 빈과 니더외스터라이히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산맥에서 남쪽 방향으로 넓은 평평한 분지가 펼쳐져 있기에 오스트리아의 축산업과 농업의 핵심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원래 과거부터 소량의 석유가 배출되는 지역이었으나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구로 넘어가면서 석유 생산을 통한 수익 창출을 소련에게 양도합니다. 이 대가로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최종적으로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본격적인 경제 재개발이 1950년대 부터 시작됩니다. 체코와 같은 동유럽 국가들과 특히 수도 빈과의 활발한 경제 교류로 개발이 진행되었기에 비엔나에 가까운 지역이나 도시일수록 경제적으로 부유한 현상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주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경제적으로 크게 수익을 창출할 만한 산업이 존재하지 않고 심지어 본인들이 생산했던 소량의 석유조차 소련으로 넘어갔기에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 포함됩니다. 니더외스터라이히는 수도 빈에 식수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담하고 있는데 온천수가 흐르는 수로 위에 상수도(Hochquellenleitung)를 건설하고 생활수를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와 슈타이어마크 주에 놓여있는 수원으로부터 공급받습니다. 큰 범위에서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총 다섯개의 지역구로 구분되어 있는데, 주도 쌍크트푈튼이 있고 행정을 담당하는 산업지구, 도시 크렘스와 멜크가 놓여있어서 관광으로 유명한 중앙지구, 비너발트 산맥이 있는 산맥지구, 이밖에 포도주를 비롯한 다양한 과일주에 필요한 과일들을 재배하는 와인지구와 과일주지구가 니더외스터라이히를 구성합니다. 특히나 와인 지구와 과일주 지구에서 포도주 전용으로 생산·재배되는 포도는 굉장히 높은 질을 자랑하기에 여기서 생산하는 포도를 가지고 만든 백포도주, 즉 니더외스터라이히산 화이트 와인은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에서 질적으로 최상급 와인으로 항상 선정되지요.
사회 & 문화
수도 빈과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해있기에 과거부터 니더외스터라이히 주는 사회와 문화적인 측면 역시 비엔나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여가생활 특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니더외스터라이히는 면적의 40%이 가까이 초원과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산책을 비롯한 등산객들에게는 티롤 주와 쌍두마차를 이루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유네스코 선정 세계유산에 등재된 도나우 강 하류 일대를 따라서 30km가 넘는 길게 펼쳐진 '바하우(Wachau)' 지역이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자연경관을 책임지고 있으며 관광산업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바덴 바이 빈'과 '뫼들링'같은 도시가 위치해 있습니다.
주로 여름마다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산맥 지구에서 펼쳐지는 야외 음악회와 연극들이 다양한 편이며 체코 및 슬로바키아와 경계를 두고 있기에 동유럽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해외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멜크'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같은 문화재와 뒤른슈타인과 악크슈타인 같은 유적지들 역시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에 분포되어 있어서 역사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화가인 '에곤 쉴레', '코코슈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라이문트'를 넘어 작곡가 '하이든' 또한 니더외스터라이히 출신이라 예술 분야에서도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도 선정됩니다. 불과 10몇년전까지만 하여도 한 겨울이면 동쪽 알프스라고 불리는 비너발트 산맥에서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려 오는 사람들이 상당했지만 요새 지구 온난화로 이 지역의 연평균 적설량이 점차 감소하였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극격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기에 현재 큰 사회 문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빈과 마찬가지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재를 제공하는 주는 니더외스터라이히가 오스트리아에서 거의 유일하기에 관광으로 거두어들이는 수입이 빈과 티롤 주 못지않게 막대합니다.
2021.10.28 - [오스트리아 일상기/장소리뷰] - <오스트리아 후기> Stift Melk / 멜크 수도원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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