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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포어아를베르크 주

<오스트리아 정보>

현재 오스트리아를 구성하는 총 9개의 '연방주 (Bundesländer)'에서 가장 서쪽에 놓여 있는 '어아를베르크 (Vorarlberg)' 연방주는 40만 인구수와 2,600 km²의 면적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작은 지역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포어아를베르크란 공식 명칭을 대신하여 '작은 땅'이란 뜻의 별칭인 '랜들레(Ländle)'라고도 불리지요. 지리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터라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 이 두 나라와 경계를 지니고 있고 바로 북쪽 방향으론 독일, 동쪽으로는 알프스 산맥을 두고 다방면에서 경쟁을 펼치는 티롤 연방주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나 오스트리아의 경제·문화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선사하는 지역이지만 역사 및 언어적으로 여타 오스트리아의 연방주들과 비교 시 편차를 보입니다. 

  역사

 

 

포어아를베르크 연방주의 역사는 기원전 500년 '브리간티'라는 명칭의 켈트족 분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세기경 로마제국이 영토를 지배하면서 로마 제국의 군사적 중추지 중 하나이고 과거 브리간티 부족의 명칭을 빌려 '브리간티움'이란 요새도시를 설립하는데 이 요새의 명칭에서 현재 연방주의 주도(都)인 '브레겐츠 (Bregenz)'가 파생됩니다. 게르만족 계열의 부족 연합체인 '알레마니'가 3세기에 브레겐츠를 침공하면서 세력이 로마 제국에서 신생 게르만 부족으로 넘어갑니다. 알레마니 연합체에서 '브레겐츠 백작 가문'이 탄생하고 이 가문이 포어아를베르크 지역을 본인 영토로 주장하는데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브레겐츠 가문 치하로 들어서게 되지요. 그러나 여타 알레마니 연합체에서 파생된 부족 가문들과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브레겐츠 백작 가문의 세력이 점차 약화됩니다. 그렇게 약화된 브레겐츠 가문을 13세기에 독일 슈바벤 지역의 영주인 '몬트포르트 (Montfort)' 백작 가문이 알레마니 갈래의 여러 부족들과 연합하여 침공하면서 새로운 왕좌의 주인으로 올라서게 되고 다방면에서 백작 가문의 탁월한 통치로 인하여 포어아를베르크 지역은 큰 발전을 이루게 되지요. 오늘날 연방주의 문양에 나타나는 붉은 깃발 역시 몬트포르트 백작 가문의 문장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스위스에서 출범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으로 포어아를베르크는 14세기에 합스브루크 가문으로 온전히 통합됩니다. 포어아를베르크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데 당시 가로막힌 지역들을 이어주는 길목 역할을  '아를베르크(Arlberg)'란 고산이 유일하게 도맡아 왔기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본인들 영토가 아를베르크 고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하여 독일어에서 '앞'을 뜻하는 접두어 '포어(Vor-)'를 덧붙여 '포어아를베르크'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영토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포어아를베르크 주 (붉은색), 주 문양 (우)

당시 15세기로 넘어갈 시점에는 독일 서남 지방과 더불어 현 스위스 지역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는데 이들 중 포어아를베르크가 스위스와 독일 서남 지방의 대표 행정 지구로 승격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까지 '독일 서남 지방, 스위스, 포어아를베르크' 이렇게 세 지역에서 사용되는 독일어 방언은 동일하지요. 시간이 흘러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포어아를베르크는 합스부르크 황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독일 바이에른 왕국에 편입되는데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 제도에 상당한 불만을 품었던 포어아를베르크 백성들은 봉기를 일으켜 독립합니다. 이후 동쪽 경계에 위치한 합스부르크 황실 치하의 티롤 백작령과 연합국을 설립하지만 대표 행정 지구는 티롤 백장령으로 양도되었기 때문에 실세는 티롤 백작령에 있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발발한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이 몰락한 후 포어아를베르크는 티롤 백작령과 분리되면서 대국민 투표가 실시됩니다. 투표 결과에 따라서 분리된 포어아를베르크가 언어와 문화적인 요소를 공유하는 스위스에 편입되는 점에 대한 여부의 판가름이 결정되었고 절반 이상의 찬성표로 스위스 편입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내 비독어권 민족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포어아를베르크가 편입되면 독어권 지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이는 권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테니 편입을 격렬히 반대합니다. 스위스의 반대 세력으로 확정된 투표 결과는 번복되어 포어아를베르크는 자주적인 독립국의 정세를 유지하려 하였으나 나치 독일에 오스트리아가 병합되면서 졸지에 포어아를베르크 또한 나치당에 강제 합병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 당시 빈 중심으로 확대되는 사회주의식 집권주의에 포어아를베르크는 크게 반발하였지만 성과는 미미하였고 현재 오스트리아 공화국의 연방주로 자리매김합니다.

 

  지리 &  경제

 

 

포어아를베르크 연방주를 지리적으로 티롤주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알프스 산맥이 펼쳐져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에 걸쳐 있는 호수 '덴제 (Bodensee)'와 알프스 라인강의 상류가 연방주의 서쪽 경계를 따라서 흐르고 동쪽으로 아를베르크 고산을 중심으로 동알프스 산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스위스와 독일 서남 지역과 접점에 위치하였기에 여타 오스트리아의 연방주들 보다 독일과 스위스와의 교류가 더 활성화되어있는데  관광 명소 보덴제 호수를 기점으로 포어아를베르크의 여러 자연 명소들은 현재까지 앞선 이웃 국가들과 공동 행정 구역으로 선정되어 관리됩니다. 지질학적으로 포어아를베르크는 단열대, 즉 해저 단층의 불규칙적인 형태로 형성된 비대칭 지면이 발달한 지역이기에 경사와 지면의 굴곡이 많고 심지어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연방주이기도 한데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해저 단층의 불균형으로 매년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낮은 진도의 미진이 수차례 생성되는데  이런 이유에서인지 자연재해가 오스트리아 내에서 상당히 자주 발발하는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계곡과 산맥의 땅'답게 포어아를베르크는 오스트리아의 간판 계곡이 발달하였는데 알프스 산맥을 통해서 흐르는 상류 라인강을 둘러싸며 형성된 '인탈 계곡 (Rheintal)'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곡은 무엇보다도 하천의 역할로 빗물이 모여드는 대표 유역 지대로 여겨지고 있지요. 이 외에도 포어아를베르크 연방주는 연평균 낮 온도가 13°C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추운 지방으로 다른 연방주의 건조한 대륙성 기후와는 상반되게 독일 서남 지역과 마찬가지로 습하고 일교차가 심하지 않은 해양성 기후와 유사한 날씨를 보입니다.

라인탈 계곡 (좌), 보덴제 호수 (우)

포어아를베르크는 주도 '브레겐츠'를 주축으로 '언비른(Dornbirn), 트키어흐(Feldkirch), 루덴츠(Bludenz)' 지역구 이렇게 전체 4개의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포어아를베르크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고도의 산업화를 이룩한 연방주인데요. 복합적인 섬유산업이 핵심 산업으로서 연방주의 경제를 빠르게 부흥시켰으나 20세기 중·후반부터 인건비와 원재료 비용의 폭등으로 제조 공장이 점차 해외로 이전을 실시하자 포어아를베르크의 섬유산업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수력 발전을 통한 전력 공급이 오스트리아 내에서 유일하게 충족되기에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이 고도로 발전하였고 포어어를베르크에서 생산된 친황경 전력은 독일과 스위스로 수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오늘날은 섬유산업의 뒤를 이어서 정밀공정, 전자공업 등을 포함한 전자산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고 이를 토대로  수출량이 전체 포어아를베르크 생산량의 80% 가까이 차지하면서 오스트리아 내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연방주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관광업 또한 무시할 수 없는데 스키, 스노보드 등의 알프스 산맥을 이용한 동계 스포츠를 즐기기 위하여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겨울 한철 장사로 평균 25억 유로 (약 4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티롤 연방주에 이어서 동계 스포츠로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이 가장 큰 지역입니다. 산업 전반부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포어아를베르크는 오스트리아 여타 연방주들의 모범이 되는 지역이기에 가장 부유한 연방주에 포함됩니다. 

  사회 & 문화

 

 

정치적인 측면에서 포어아를베르크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연방주의회에서 과반수 이상이 보수를 대변하는 국민당(ÖVP)과 자유당(FPÖ)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포어아를베르크의 정권을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보수 세력이 입김이 강한 지역이지요. 연방주 주민들이 보수 편향적인 태세를 취하는 이유는 과거 20세기 초반 빈에서 출몰한 '빈 중심 사회주의식 전체주의'를 반대를 하였기 때문인데요. 역사적으로 포어아를베르크는 여타 오스트리아의 연방주들 보단 중립적인 자본주의식 제도를 따르는 스위스와 다방면에서 동질감을 느낍니다. 연방주의 방언 또한 살펴보면 포어아를베르크의 사투리는 스위스식 독일어와 압도적으로 유사하지요. 9개의 연방주들 중 유일하게 '알레마니 독일어'가 스위스와 더불어 사용되기에 마치 우리나라의 '제주 방언'처럼 '바이에른 독일어'를 사용하는 다른 연방주와 비교 시 어휘와 발음면에서 큰 편차를 보입니다. 지리적으로도 스위스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포어아를베르크에서 해발 3300m로 가장 높은 알프스 산인 '츠 부인 (Piz Buin)'이 두 지역을 가로지르는 경계 역할을 하고 연방주를 대표하는 자연 명소인 '보덴 호수' 역시 스위스에 걸쳐있기에 공동 관리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보덴 호수가 연방주에 기여하는 바는 상당한데 우선 인공적으로 대대적인 정수를 진행하였기에 현재 시민들에게 식수로 활용됩니다 또한 낚시를 통해 잡아들이는 민물고기가 한 해 동안 약 300톤에 달하기 때문에 여가 생활과 더불어 시민들의 식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소이지요.

피츠 부인 산 (좌), 브레겐츠 축제 (우)

보덴 호수를 제외하고도 포어아를베르크는 수많은 자연 문화재를 지니고 있는데 약 80개 넘는 산, 호수, 고개 등이 천연보호구역으로 선정되어 지역의 명소로 남아있고 스위스와 유사하게 음식 문화 역시 치즈를 활용한 음식들이 즐비하여 있습니다. 연방주 문화를 주름잡는 요소는 자연 명소 외에도 주도인 '브레겐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브레겐츠의 제일 높은 '팬더(Pfänder) 산'에 오르면 약 200개의 산들로 구성된 포어아를베르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에 주도 시민들의 대표 문화지로 자리매김하여 있습니다. 1946년부터 매년 여름마다 실시되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인 '레겐츠 축제 (Bregenzer Festspiele)'가 연방주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는데 보덴 호수 위에 설치된 수상 무대에서 클래식 오페라를 넘어 다양한 뮤지컬과 연극 등이 열립니다. 특히나 브레겐츠 축제는 명성도 명성이지만 소리의 방향과 음질을 야외 관객이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도록 브레겐츠 축제만의 독특한 음향 시설이 구축되어 있어서 축제의 묘미를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