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타 동물들의 '소통 방법'과는 별개로 인간은 고유의 '언어'를 통하여 소통을 하지요. 꿀벌들 같은 경우 날갯짓과 '페로몬'이란 분비물로, 돌고래는 초음파로, 강아지는 몸짓과 울음소리로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하는 반면 인간들의 언어는 다른 동물보다 복합적이고 세분화된 체계들로 구성되어있지요. 제가 동물들 간에 '소통 방법'을 '언어'라 칭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소통에는 문자와 같은 형태가 없고 문법이 단순하며 그밖에 문화와 정서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지시, 행동 표현', 이 두 가지 용도 외에는 동물들이 소통할 수 있는 요소들은 인간의 '언어'와 비교 시 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우리가 동물들이 '말'을 한다고는 하지 않지요. 이런 관점에서 '언어'란 인간에게만 부여된 고유 능력이라 보아도 무방한데요, 우리의 '언어'에는 '육성' 외에도 문자, 표정 그리고 농아인들을 위한 손짓과 몸짓을 이용한 '수화'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언어의 형태인 '육성'을 놓고 보았을 때 이용하기에는 그 무엇보다 간편하고 단순하지만 '육성'을 통해 단어 또는 문장을 만들기에 우리 몸속에 있는 수많은 기관들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처리 기관
우리가 '말'을 한다는 뜻은 다른 말로 '발음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작동하기에는 우선 '처리 기관'으로부터의 자극을 통한 '명령'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처리 기관은 우리의 '두뇌'가 담당하고 있고 두뇌에서도 대략 3mm 두께의 '신피질 (Neocortex)'이라는 '표면을 덮는 조직'에 자리 잡고 있지요.
신피질은 크게 '인지, 판단, 창의'를 담당하는 '연합피질 (Association Cortices)'과 '감각과 움직임'을 제어하는 '일차 감각-운동피질 (Primary Sensory and Motor Cortices)'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논리와 언어 능력'은 주로 좌뇌의 신피질이 담당하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좌뇌의 신피질 중 좌뇌 전두엽에 위치하는 '브로카 영역 (Broca's Area)'과 좌뇌 측두엽에 있는 '베르니케 영역 (Wernicke's Area)', 이 두가지 영역이 '언어 처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요. 만약 베르니케 영역에서 '언어의 해석과 이해'가 이루어진다면 브로카 영역은 '언어의 생성', 즉 말을 하는데에 필요한 발음 기관들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이 둘 중의 하나의 영역에서라도 제대로 된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실어증'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이 들어있는 신피질에서 이루어지는 중추 신경계의 상호 작용과 수백억 개의 '신경 세포 (Neuron)'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말을 하기에 필요한 '자극'이 발음 기관에 '초당 100미터'의 속도로 전해지게 됩니다.
발음 기관
우리가 즐겨먹는 '수박'이라는 과일을 말하고 싶다면 대뇌에서 '수박'이라는 과일 자체를 우선 인지하고 있어야하고 이에 따른 해석이 뇌에서 끝나면 발음 기관들을 조정하여 이 단어를 '육성'으로 옮기지요. 우리가 특정한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기'라는 매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관중 호흡을 담당하는 '폐'가 팽창과 수축을 통한 압력으로 '공기의 흐름 (airflow)'을 생성하고 이러한 '공기의 흐름'은 '후두'에 위치한 성대의 틈인 '성문'이 좁혀지면서 여기를 통과하는 과정 중 진동하게 되지요.
이렇게 공기의 흐름이 폐의 수축과 팽창으로 만들어져서 성대를 통해 진동되는 과정을 우리는 '조음 (sound generation)'이라고 칭합니다. '조음 과정'을 지난 공기는 계속 올라가게 되고 곧 바로 이어서 특정 기관들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이런 특정 기관들은 대체적으로 '혀, 목젖, 입천장, 잇몸, 치아 그리고 입술'로 구성되어있고 이 기관들에 부딪힌 공기는 이어서 '코 또는 입'이라는 특정한 통로로 빠져나가게 되지요. 이러한 '진동된 공기'가 기관들에 부딪히고 특정한 통로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발음(articulation)'이라고 부르는데요. 만약 "아, 에, 이, 오, 우"처럼 공기가 다른 기관에 부딪히지 않고 오로지 '혀 위치와 개구(입 벌림)의 정도'에 따라서 발음되는 소리를 '모음 (vowels)'이라 부르고, '혀 위치, 개구의 정도' 그리고 치아, 입천장 등 '특정한 기관'에 부딪히면서 발음되는 소리를 '자음(consonants)'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예로 들었던 '수박'을 보면 '수'의 'ㅅ'은 혀가 윗잇몸을 닿으면서 생기는 '마찰음(fricative)' 형태의 자음이고 '박'의 초성 'ㅂ'과 종성 'ㄱ'은 각각 양 입술과 혀 뒤쪽이 연구개를 닿으면서 생기는 '파열음(plosive)' 형태의 자음으로 '수박'이라는 두 글자를 발음하기 위하여 우리는 '혀, 입술, 입천장, 잇몸' 최소한 4개의 기관을 동시에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되지요.
실제 언어학에서 '말을 하는 과정'을 배울 때는 위에 설명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만 이 모든 것을 요약하자면 '폐'에 의하여 생긴 공기는 흐름의 강도에 따라 목소리의 '음량 (volume)'이 결정되고 성대를 통한 '공기의 진동수 (frequency)'에 따라 목소리의 높낮이가 정해지게 되는데요. 음량과 특정한 높낮이를 가진 공기의 흐름은 마지막에 발음 기관에 부딪히면서 '목소리의 형태', 즉 '모음'과 '자음'이 결정됩니다. 이렇게 복잡한 발음 과정으로 이루어진 '단어'들을 조합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상황에 맞게 사용하는 것을 우리는 '말을 한다'라고 합니다.
저는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가끔씩 쓸데없는 푸념과 망상(?)을 하곤 했었습니다. '인지-해석-자극전달-조음'이라는 복잡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아무 제약과 어려움 없이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지를 여러 번 느꼈는데요.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존재인지도 느꼈습니다. 이유는 말을 하기까지에 필요한 수많은 기관들과 거쳐가는 복잡한 과정들이 값지고 위대한지를 우리는 망각하기 때문이지요. 아마 우리는 이 모든 과정들을 쉽고 문제없이 할 수 있기에 이는 '인간으로서 권리이자 당연하다'라고 치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생활하면서 '권리이자 당연하다'라고 여기는 것들 뒤에는 '값지고 감사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요. 이러한 값진 사실들을 망각하니 우리 모두는 가끔씩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잘했는데 동료들이, 친구들이, 가족이 또는 국가가 나한테 이것밖에 못해줘?"라는 말들을 쉽게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불의와 악행에도 불평, 불만하지 말아라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의에만 우리가 혈안이 되어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고 불평하기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사한지를 먼저 알아야 되다는 말이지요. 막말로 '내가 지금 노력하고 잘하는 것'들 뒤에도 '건강'과 '기회'라는 조건들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겠지요. 발음에 필요한 여러 기관들 중 단 하나의 기관이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우리는 '수박'이라는 짧은 두 글자도 발음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다'라고 여기는 것들 뒷면에는 '복잡하고, 값지고, 위대한 것'들이 얽히고설켜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지리청년의 언어 이야기 > 언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어떻게 우리말을 할 수 있을까? (0) | 2021.11.16 |
---|---|
바른말이란 무엇일까? (0) | 2021.09.24 |
언어학은 도대체 무슨 학문일까? (0) | 2021.09.05 |
언어 이야기를 시작하며 (2) | 2021.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