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쉬운 언어는 모국어이고 가장 어려운 언어는 외국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언어라고 여겨지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라 함에도 불구하고 '배움'에 쏟은 노력과 시간 투자 대비 구사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이 보이지가 않아 안타까움을 호소하시는 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익숙한 언어가 아니라 만약 독일어, 아랍어, 러시아어등의 일상에서 보기도 듣기도 힘든 언어들을 배울 시에는 이러한 문제점이 더욱 노골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외국어를 배우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비화를 듣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전 세계 7000가지가 넘는 언어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유아기 때부터 그 어떠한 전문적인 교육없이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한국어가 다른 7000가지의 언어들보다 절대적으로 간단하고 쉬워서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거리낌 없이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지능이 다른 어떠한 나라 사람들보다 낮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게 이렇게 고단하고 힘든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을 던진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라 과거부터 다수였고 '인간이 어떻게 모국어를 문제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가?'는 이렇게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완벽하게 풀리지 않은 난제에 속하고 이에 따른 수많은 연구들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행동주의와 언어 습득
우리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어려서부터 한국말의 언어 체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특정한 언어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현상을 '언어 습득(language acquisition)'이라고 부르지만, 언어 습득의 과정과 원인을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규명하기에는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유자재로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에 관련한 전문적이고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인 20세기 극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20세기 초반 당시 미국의 심리학자 '왓슨 (John B. Watson)'은 심리학이란 학문을 단지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으로 변모시키려 하였습니다. 왓슨의 의도는 어떤 것이 과학의 공식으로 입증이 되려면 연구가 오로지 우리의 눈과 귀로 관찰이 가능한 대상을 기반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논리였는데요. 다시 말해 객관적인 자료만이 연구의 기반이 될 수 있고 이러한 객관적인 자료는 심리학에서 사람 각개인이 보이는 '행동'을 나타낸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각각의 행동은 우리가 처해진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냐에 의해서 결정이 난다는 뜻인데, 왓슨은 이런 우리가 노출된 환경에서 보고 듣는 것을 '자극(Stimulus)'이라 부르고 이러한 자극에 우리가 대처하는 모습을 '반응(Reaction)'이라고 표명합니다. '자극과 반응'이라는 연쇄상호 작용으로 한 사람의 행동이 결정된다라는 뜻에서 왓슨은 이를 '행동주의(Behaviorism)'라 부르고 왓슨의 주장은 심리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지게 됩니다.
20세기 초·중반 이런 왓슨의 행동주의를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추종하고 지지하였던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스키너 (B.F. Skinner)'가 바로 그 인물이었는데요. 스키너는 왓슨의 행동주의를 표본으로 심리학을 뛰어넘어 인간의 언어 구사 능력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특정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원인과 과정을 스키너는 인간이 유아기 시절인 만 6세 이전에 보고 들었던 주위 사람들의 '말버릇'에서 찾습니다. 부모와 형제를 망라하는 가정을 비롯하여 스마트폰, TV, 라디오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들이 전달하는 '말버릇'에 유아기 시절부터 노출이 되면 아이가 체계적으로 언어를 습득한다는 주장인데요. 쉽게 말해, 이러한 주위 환경의 '말버릇'에 대한 노출이 유아기 때부터 끊임없이 지속되면 아이가 이 '말버릇'을 저절로 따라 하게 되면서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다는 논리이지요. 행동주의에 입거하여 주위 환경에서 듣는 '말버릇'을 스키너는 '자극'이라고 부르고, 유아기 시절 아동이 환경의 '말버릇'을 따라하면서 반복하고 만약 아이가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면 주위에서 이를 수정하면서 모국어를 습득해 나간다고 표명합니다. 이 말은 즉슨, 만 6세 미만의 아이가 특정한 언어를 구사하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면 '말버릇'을 따라 할 수 없고 이 '말버릇'을 수정해주는 매체 또한 없기에 언어 습득이 불가능하다고 해석됩니다. '주위의 말버릇 (자극)- 따라 함 (모방) - 피드백 (수정)'으로 일축되는 연쇄작용으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리의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적으로도 지속적인 '자극-모방-수정'의 과정이 유아기 시절에 전무하다면 모국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이 20세기 초·중반 당시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한국어 대신 영어를 모국어로 쓸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점에서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에서도 스키너의 주장이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색의 푸른 생각은 격하게 잠을 잔다"
우리는 살다보면 순탄한 우리 인생에 태클을 거는 인간들을 최소한 한 두 명씩을 만나게 됩니다. 스키너 역시 그리하였는데요. 20세기 초반만 하여도 스키너의 주장은 학계의 정설처럼 여겨졌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스키너의 논리에 의구심을 가지는 학자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인 '버코 (Jean Berko)'는 유아기에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어떤 실험을 진행합니다. 실험의 내용은 영어 명사의 복수형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었는데, 실험에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던 금시초문의 새로운 영어 단어가 출제되었습니다. 'Wug'이라는 어떤 상상 속의 새를 뜻하는 신조어를 접하자 실험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처음에 극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하나둘씩 'Wug'이란 단어에 영어 복수형을 만드는 어미 '-s'를 붙여서 'Wugs'라는 복수형 명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외에도 다른 나라 언어로도 똑같이 진행되었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영어 때와 일치하였고 이 실험을 통하여 버코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바로 '언어 습득 과정에 놓여 있는 아동들은 스스로 규칙을 발견하고 본인의 논리에 맞게 이를 적극 활용한다'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스키너의 말대로라면 'Wug'이란 명사는 살아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였기에 환경으로부터의 자극(말버릇)은 당연히 존재할 수 없고 자극이 없으니 아이들이 모방을 못하니 'Wug'의 복수형을 만들 수 없는 것이 정상이어야 하였는데요. 그러나 버코의 실험이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스키너의 주장인 '아이들은 주위 환경의 말버릇을 모방하는데에서부터 언어를 습득한다'에 큰 논리적 허점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버코의 실험과 더불어 1950년대의 한 개의 논문이 출판됩니다. 이 논문은 스키너의 '자극-모방-수정'의 연쇄 작용으로 언어가 습득되는다는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요. 이 논문의 저자이었던 유대인계 미국인 언어학자인 '촘스키(Noam Chomsky)'는 스키너가 말하는 주위 환경의 자극이 너무나 제한되어있기에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모순 투성이인 맛보기 논리로 치부시켜 버립니다. 아무리 부모 또는 형제가 성인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만드는 단어와 문장이 온전히 어법에 맞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이러한 의견을 내세우는데요. 촘스키는 본인의 논문에서 "무색의 푸른 생각은 격하게 잠을 잔다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라는 문법에 맞지만 당최 의미를 알 수 없는 난해한 문장을 선보이면서, 모든 인간은 이처럼 난생처음 듣는 어불성설에 까가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스키너가 말하는 주위 환경의 '자극'만으로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이에 더해서 촘스키는 언어 습득은 스키너가 말하는 것처럼 후천적으로 환경의 자극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부성(Nativism)', 즉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표명합니다. 새가 하늘을 날 수 있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라면 선천적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천부적인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 뇌에 장착되어 있다고 촘스키는 설명합니다. 이런 언어 습득에 필요한 인간 고유의 선천적인 능력을 촘스키는 '보편 문법 (Universal Grammar)'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천부적인 능력을 통하여 인간은 주위 환경의 자극 없이도 모국어를 습득할 수 있고 수십 개의 단어들을 본인 모국어 어법에 맞게 배열하고 조합 또한 가능하다고 촘스키는 열변을 토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특정한 외부 자극에 얽매여 있지 않고 새로운 문장을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생산적(generative)'인 언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촘스키의 '보편 문법'은 스키너의 주장을 한 번에 뒤 없고 선풍적인 논리라 불리면서 학계에서 새로운 정설로 자리 잡습니다.
선천적 언어 습득 vs. 인지적 언어 습득
촘스키의 이론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에 학계에서는 촘스키를 '언어학의 아인슈타인'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촘스키라도 인생의 태클을 모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촘스키가 표방하는 보편 문법에 반기를 든 '피아제(Jean Piaget)'라는 스위스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생물학자가 나옵니다. 피아제는 촘스키의 논리를 상당 부분 인정하나 도대체 '보편 문법'이라는 기능이 두뇌의 어느 부위에 장착되어있고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을 내세우는데요. 만약 촘스키가 말하는 보편 문법이 뇌에 장착되어 인간이 태어난다면 언어 습득만을 위한 특정한 DNA가 보편 문법이라는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하지만 이런 DNA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피아제는 촘스키의 의견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언어 습득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수리적 처리, 감각, 운동신경에 해당하는 '인지 능력 (coginitve ability)'중 일부에 불과하기에 단 하나의 환경적인 요인 없이 언어 습득은 불가능하다고 피아제는 설명합니다. 선천적인 요인이라 함은 주로 올바르게 작동하는 신체 장기를 뜻하고 정상적인 두뇌와 더불어 아동이 커가면서 주위 환경으로부터의 적절한 자극 역시 필수적이라는 의견을 피아제는 덧붙입니다. 즉, 정상적인 두뇌 기능과 적절한 환경이 주어지면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모국어는 습득된다라는 논리이지요. 그렇지만 피아제가 표방하는 인지적인 언어 습득 또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게, '인지'라는 기능 자체는 두뇌에서 해석하고 다른 장기로 신경 세포를 통한 자극 전달에 치중을 두는 것이지 '습득'하고는 동일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인데요. 만약 언어 습득이 인지 발달의 일부라면 도대체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우들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으며 유아기 때 언어 인지능력을 담당하는 두뇌의 전두엽을 절제하여도 훗날 어떻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가 설명이 피아제 측에서도 필요하다고 촘스키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입니다. 과연 인간의 언어 습득이 촘스키가 주장하는 선천적인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피아제와 더불어 다수의 심리학자가 펼치는 논리대로 단순히 '인지 발달의 일부'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인지에 관련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시원하게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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