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으로 외국어등의 특정한 언어를 배우고 습득하고 어느 정도 구사하기에 최소 2년 이상의 지속적인 시간상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시간 투자' 외에도 배우고자 하는 언어에 끊임없이 '노출'이 되어야 하고 이런 배움의 의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지속적인 흥미 또한 우선순위가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습득하고자 하는 외국어를 평상시 주위에서 보고, 듣고, 쓰고, 말하기에는 그 외국어를 우리는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기에 큰 제약이 걸립니다. 아무리 다방면에서 2년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졌다한들 앞선 이유로 외국어 구사 실력의 정진이 상당히 더딜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아무리 한국에서만 거주할지라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의 경우는 그나마 구사 실력이 학교나 여러 매체들을 통해 투자 대비 어느 정도 상승효과를 볼 수 있겠으나 외국 현지에서 직접 몸소 부딪히며 배운 사람들의 언어 구사력과는 여전히 차이가 심합니다.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에는 물론 본인이 외국 현지로 나가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테지만 대다수에게는 여러 여건들로 인하여 그런 기회가 잘 마련되지 않지요. 우리가 직접 그 현지 국가에서 배울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몇 가지'만 바꾼다면 이런 제약적인 상황에서 제한된 조건으로 외국어를 배울 시 학습 효과를 극대화를 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중 일부가 바로 배우고자 하는 언어에 대한 '관점'과 '태도'인데요. 이러한 '관점과 태도'의 변화는 다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을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언어는 유동적입니다.
전 세계에는 200개에 까가운 국가들이 있지만 이 '200개의 국가'에서 현재 사용되는 언어는 7000개가 넘습니다. 인구 9백만의 소규모 국가인 '스위스'를 예를 들면 이 작은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이용되는 공용어만 '독어, 불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로 4개나 되고 아시아에서 같은 '중국어'라도 '광둥 중국어, 객가 중국어'등의 어휘, 발음, 통사법이 모두 다른 방언이 10개가 넘지요. 이러한 '언어의 세계'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덕목은 이렇게 다양하고 세분화된 언어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리 각 개인이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또한 '유동적'이라는 것이지요. 각자의 사람이 '고유의 천성, 목소리, 외모'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것과 동일하게 언어 또한 단순히 발음 기호와 문자열로만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서' 또한 내포합니다. 통시적,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언어가 변화하고 진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환경, 문화, 정서' 이 세 가지가 미치는 영향은 가히 절대적인데요. 이유는 단순하게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쓰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언어를 단지 수학의 공식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데요. 쉽게 말해 우리가 다른 언어를 배울 때 오로지 '이성과 논리'만을 바탕으로 하는 '의미와 문법'에만 너무 치중을 둔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예문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I am Minsu. "
"위에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해 보십시오"라고 제가 말한다면 분명 이 글을 읽고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고 "지금 장난하나?" 하면서 0.1초 이내로 번역할 수 있으실 겁니다. 허나 만약 한국어와 영어, 이 두 가지 언어의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해석은 가능하지만 번역은 불가능하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합니다. 이유는 이 두 가지 언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인데요. 순 의미 전달이 목적이라면 물론 "나는 민수다"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는 완벽한 번역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에는 세분화된 경어체를 비롯하여 수많은 접사를 활용하는 종결 어미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여러 문맥과 상황들을 우선 고려한 다음에야 비로서 이를 말로 옮기고 이러한 상황과 문맥에 맞춰 쓰이는 경어체와 동사 어미들을 다 다르게 사용하지요. 만약 학교 선생님이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에 학생이 "나는 민수다"라고 답변한다면 의미상 틀리지는 않았지만 대화중 크나큰 불화 및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영어로 답한다면 이러한 한국어가 불러일으키는 오해는 현저히 적어지거나 없어집니다. 이유는 "나는 민수입니다, 저는 민수입니다, 제가 민수예요" 등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이 가능 한 우리말에 반하여 영어는 다양한 경어체 및 종결어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어째서 한국말은 이렇고 영어는 저렇지에 대한 의문은 '환경, 문화, 정서'를 배제하고서는 답변이 불가능합니다. 이는 우리말은 우리 고유의 환경과 정서를 반영하여 변화되어왔고 영어 또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서 통시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인데요. 만약 외국어를 배우려 하는 우리가 한 민족이 지니고 있는 '정서와 문화'를 무시한 채 단지 '의미와 문법'에만 중심을 둔다면 학교 선생님 질문에 "나는 민수다"라고 밖에 답변을 못하는 버릇없는 학생인 것처럼 대화 중 오해의 소지만을 남 길 가능성이 농후해집니다.
언어는 가변적입니다.
매년 우리말에서는 신조어가 수십 개에서 많으면 수백 개까지 생깁니다. '은어, 줄임말, 외래어'등의 영향으로 우리말이 마치 특정 소수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처럼 바뀌는 것이 사실인데요. 무분별한 은어 및 외래어의 사용은 저 개인적으로도 지양하지만 사회와 환경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시대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마음도 공존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현상은 우리말에만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영어, 독일어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라 사람들한테도 적용됩니다. 영어와 독일어 또한 세대와 시대가 변화하면서 신조어뿐 아니라 과거에 이 언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유의 속성' 또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영어로 예를 들자면 바로 인칭대명사 'thou'의 활용도인데요. 우리말의 '너'처럼 친근함과 동등함을 비형식적으로 표현할 때 쓰이는 영어의 'thou'는 신분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중세 시대까지만 하여도 빈번하게 통용되었던 인칭대명사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영국은 가족 단위로 움직이던 유목민 시대에서 개인의 실력과 자본이 우선시되는 상업시대로, 신분 체재에서 여러 혁명들을 통한 민주 체재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중세 영국에서 가족중심적으로 사용되었던 인칭대명사 'thou'보다 사업과 무역에 필요한 형식적이고 공손한 말투인 'you'의 빈도수가 급증합니다. 이렇게 'you'의 사용도가 높아지자 'thou'의 빈도수는 반비례하기 시작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thou'는 '사회적으로 사람을 비하할 때 쓴다'라는 새로운 인식 또한 자리 잡게 되지요. 그리고 'thou'는 단수이기에 한 사람에게만 칭할 수 있어 불편하다는 인식들이 강해지니 친근함을 나타내던 'thou'는 영국 사회에서 퇴보하기 시작하고 오늘날의 영어권에서 'thou'는 사투리, 종교 예배 등 특정 상황에서만 쓰이는 인칭대명사가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가끔씩 영어는 사람을 칭할 때 'you'밖에 없으니 싸가지가 없는 언어라고 하는데, 오히려 영어야 말로 누구한테나 공손하게 말하니까 그 어떠한 다른 나라 말보다 '싸가지가 많은(?) 언어'입니다. 이 외에도 고/중세 영어는 독일어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굴절 체계', 즉 동사 및 명사의 변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재의 영어는 이러한 체계들을 벗어던지고 고립형에 가까운 언어 (isolating language)로 바뀌지요. 제가 이런 예화를 드는 이유는 낯설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는 우리가 '의미와 문법'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모든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특징인 '가변성'을 배제시키가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1 + 1 = 2'라는 수학에서의 연산은 미래에서도 '2'로 밖에 답변을 할 수 없지만 언어는 이렇게 논리적이며 정형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한 언어가 가지고 있는 형식의 틀은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가 배우는 문법과 의미는 10년 후 또는 100년 후엔 더 이상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동 떨어진 의미이자 문법 체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떠한 언어도 불변의 수학 공식처럼 보수적으로 또는 고지식하게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저는 오스트리아에서 학사는 독어독문학을 석사는 언어학을 전공 한 사람입니다. 전공자로서 특정한 언어를 배우고 연구하기에 가장 중요한 자세가 바로 다방면에서 '열리고 트인 생각'인데요. 앞으로 언어 및 독일어 관련하여 포스팅을 할 계획인데, 게시물의 제목을 '무슨무슨 언어 수업, 강의'등으로 칭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독일어 문법이 이러니까 이렇게 해석해야만 돼, 그냥 외워" 등의 한 언어가 포함하고 있는 고유의 역사와 정서를 무시한 일방적이고 주입식의 수업 방식은 전공자인 저한테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이 독일어 비전공자이며 순수 흥미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글들을 읽을텐데 '수업'이라고 한다면 정형화되고 틀에 박힌 사고로 낯선 언어를 접하게 되고, 본인이 직접 분석해 보지 않게 되며 단지 언어를 딱딱한 공식에 의해 만들어진 '문자열'로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새롭고 낯선 언어를 접하고 배우는 사람일수록 임하는 생각과 자세가 유연하여야 되며 언어는 사람과 동일하게 살아 움직이고 변화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언어 및 독어 관련 게시글을 '언어 이야기', '독일어 이야기'로 부르며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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