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는 '고지 독일어 (Oberdeutsch)'와 '저지 독일어 (Niederdeutsch)'라는 두 가지 큰 분류로 나뉘고 이 두 가지 방언에 속한 지역어 (사투리) 또한 약 20가지가 넘습니다. 16세기 루터의 영향으로 이 두 가지 방언을 아우르는 근·현대 표준 독일어의 기반이 다져졌고 이로 인하여 언어 교육 체계가 루터의 독일어로 발전하였지만, 사람들은 한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합니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이 세 나라 모두가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지만 독일식, 오스트리아식, 스위스식 독일어의 편차가 다방면에서 너무나 컸다는 점이었지요. 아무리 루터의 독일어가 이 세 나라를 아우르는 표준 독일어의 역할을 하였다 할 지라도 지금까지 본인이 생활하면서 사용했던 사투리를 하루아침에 다른 사투리로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독어권 국가들은 루터의 독일어를 기반으로는 하되 지방의 특색과 상황에 맞고 교육과 행정에 필요한 각자만의 '표준 독일어 (Hochdeutsch)'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루터의 독일어는 '중·고지 독일어' 방언에 속한 '작센 사투리(sächsisch)'를 토대로 '표준 독일어'의 체계를 만들었기에 이와 차이가 심하였던 스위스는 '알레만 사투리' (alemannisch)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서남부는 '바이어 사투리(bairisch)'로 본인들만의 '표준 독일어'의 체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아무리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독일 서남부에 있는 바이에른 지방과 '바이어 사투리 (bairisch)'를 기반으로 한 표준 독일어를 구축하였다 하더라도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는 초반에 루터의 표준 독일어의 '맞춤법'을 사용하였기에 여러 어렴움들이 많았습니다. 언어적인 차이 외에도 종교적인 이유 또한 있었는데 루터의 독일어는 주로 개신교 측에서 이용했던 것에 반해 개혁 이후에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천주교에 영향을 받고 있었지요. 언어적, 정서적, 종교적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루터의 표준 독일어와 모두 다르니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만의 맞춤법으로 루터 독일어를 개정해 나갑니다. 그리고 '바이어 사투리'를 공동으로 사용하였던 독일 서남부 바이에른 지방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내에서도 언어적 차이가 존재하였는데요. 독일에 속하기에 오로지 '독일어'만을 썼던 바이에른 지방과는 별개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체코,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와 같은 다수의 현재 동유럽 국가들 또한 지배하고 있었기에 순수 독일어를 사용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라 할지라도 '체코어, 헝가리어' 등의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여러 면들을 고려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언어학자인 '포포비치 (Johann Siegmund Popowitsch)'는 18세기 중반 독일 서남부 바이에른 지방을 제외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만의 맞춤법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포포비치의 연구를 바탕으로 '루터 독일어'를 중심으로 둔 독일식 독일어를 배제시키고 '오스트리아식 독일어 사전'이 출간됩니다. 포포비치의 연구덕에 오스트리아식 사전은 얻었지만 아직까지 범국가적으로 공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더해 오스트리아내에 있었던 행정/ 문화/ 교육기관에서는 여전히 루터 독일어의 맞춤법을 사용하였고 '체코어, 헝가리어, 세르비아어' 또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지요. 18세기 후반 교육과 종교에서 여러 개혁들을 일으켰던 대군주 '마리아 테리지아'와 그의 아들 황제 '요제프 2세'는 본인들이 독일어를 사용하기에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언어들을 제외시킨 '독일어'만을 제국 내에서 통용되게 만들고 언어의 단일화를 추진하지요. 독일어만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일한 공용어가 되었기에 다른 모국어를 사용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독일어를 필수적으로 배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타 동유럽 국가들의 행정 기관에서는 본인들의 모국어와 독일어를 병행해야만 하였고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에서는 독일어로만이 수업이 진행되었지요. 그리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통치자들은 언어 단일화 외에도 포포비치의 연구를 토대로 만든 '오스트리아식 독일어 맞춤법'을 범국가적으로 공표한 18세기 후반부터 독일식 독일어와는 다른 '오스트리아식 독일어(österreichisches Deutsch)'가 표준어로 제국내에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오스트리아식 독일어를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독일 중·남부 지역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주축으로 19세기 초반에 설립된 '독일 연합국 (Deutscher Bund)'에서 순수 '맟춤법' 때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외교적인 마찰'로까지 이어지게 되지요. 그리고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제국이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독일 연합국'은 붕괴가 되고 독일 중·남부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언어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독어권 국가들이 베를린에서 개최한 '정서법 회담 (Orthographische Konferenz)'에서 '오스트리아식 독일어 맞춤법'과 '독일식 독일어 맞춤법'의 차이가 인정되면서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표준 독일어 (österreichisches Hochdeutsch)'라는 오스트리아만의 자주적인 독일어로 비로소 19세기 후반에 자리매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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