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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비엔나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15구 루돌프스하임-퓐프하우스 / Rudolfsheim-Fünfhaus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구성하는 전체 23개의 구(Gemeindebezirk)들 중 제 '15구'에 해당하는 '돌프스하임-퓐프하우스(Rudolfsheim-Fünfhaus)'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을 알아봅시다.

루들프스하임-퓐프하우스 문양

면적 3.9km²로 비엔나에서 소규모 지역구로 여겨지는 빈 15구는 동쪽에 빈 7구와 6구가 붙어있어서 위치상 빈 중심에 있는 지역구입니다. 19세기 후반 수도 빈에 통합되기 전까지 빈 15구는 총 4개의 구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각의 구역들이 위 문양에 나타나 있고 17세기 발생하였던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부터 복구하면서 새로 생긴 구역들이라고 하는데요. 문장 위에서 왼쪽의 그려진 삽화는 초승달로 '루스텐도어프'를 묘사하고 바로 오른쪽 그림은 와인 포도 재배지로 알려져 있는 '라인도르프' 구역을 나타냅니다. 중앙의 백색 바탕에 새겨진 사슴은 '부라운히어쉔'이란 구역인데 이 구역의 명칭 자체가 '갈색 사슴'이란 뜻인 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맨 밑의 붉은색 바탕에 그려진 대천사 미하엘과 용은 '퓐프하우스'와 '젝스하우스'라는 구역들을 상징하는데요. 이 구역에서 과거 성 바오로 수도회가 영주로 군림하였기에 이 수도회가 가지고 있었던 상징 문양의 삽화가 전해졌습니다. 참고로 라인도어프, 루스텐도어프, 부라운히어쉔 이 3개의 구역들 모두 수도 빈에 편입되기 바로 직전에 '루돌프스하임'이란 새로운 명칭 아래에서 하나의 구역으로 통합되는데요, 퓐프하우스와 젝스하우스란 구역들 역시 서로 통합되면서 '퓐프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19세기 중반 당시 옷감을 생산하는 섬유 노동자들이 점점 기계화가 되어가는 산업 체재로 인하여 본인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는 형국이 되어버리자 15구를 중심으로 대소동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대소동이 불씨가 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절대주의를 반대하면서 벌어진 '민주화 혁명'이 반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슈타트할레 (좌), 서역 (우)

빈 15구는 19세기 중·후반 오스트리아의 수도권과 서쪽 지방을 이어주는 철도가 생기면서 '역(Westbahnhof)' 또한 지어지는데요. 이러한 계기로 빈 15구는 교통의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합니다. 이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병사들의 시가행진 장소로도 사용되었지요. 19세기에는 수공업자들을 비롯하여 섬유 관련이 15구의 주 산업체로 거듭나지만 혁명과 노동자들의 파업들로 인하여 산업의 현대화가 다른 지역구에 비하여 가장 더딘 지역이 되어버리는데요.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산업 형태와 노동자들의 잦은 파업으로 빈 15구는 현재까지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으로 여겨집니다. 경제적으로 불우하니 범죄율도 빈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지역구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지니고 있지만 빈 15 전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여러 전시관들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종합 공연장인 '타트할레(Stadthalle)'가 위치하였기에 빈 15구는 빈에서 여러 행사 및 문화 체험 관련하여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지역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루돌프스하임-퓐프하우스(Rudolfsheim-Fünfhaus)
 인구 80.000명 (12위)
면적 3.9 km² (16위)
물가 하 (21위)
1인당 GDP 약 21.000 유로 (23위)
치안 하 (18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