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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비엔나 커피 문화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오스트리아 정보>

'모카(Mokka)', '아인슈페너 (Einspänner)'같은 종류의 커피는 우리에게 비엔나 커피로 현재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음식중 하나인 비엔나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뛰어넘어 한 나라가 지닌 문화의 중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일명 '비너 페하우스 (Wiener Kaffeehaus)', 즉 '비엔나 커피집'이라 불리면서 오스트리아 빈의 커피를 즐기는 생활은 오랜 전통을 지녔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바꾸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였습니다. 역사와 깊이를 자랑하는 커피집이 수도 비엔나에는 대략 천 개가 넘는다고 전해지고 2011년 '비너 카페하우스'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되는 기염을 토하지요. 커피를 마시고 즐기는 생활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로 자리 잡은 오스트리아이기에 빈에서 커피집 방문은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잡아 있고 단순히 '커피를 즐기는 문화' 하나로 오스트리아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이 가히 천문학적입니다. 이탈리아와 더불어 이런 비엔나의 커피 문화는 오늘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방문하는 커피집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에 미친 영향이 막강합니다. 대부분 오스트리아의 귀족 또는 합스부르크 황실이 개발한 문화중 일부로 생각합니다만 비엔나 커피 문화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생각지도 못한 특이한 인물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콜취츠키 장교 (좌), 비엔나를 대표하는 커피집 '카페 센트랄' (우)

 

17세기 중반 리투아니아-폴란드 출신인 어느 상인이 있었습니다. '취츠키 (Georg Koltschitzky)'로 불리던 이 상인은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동방 국가들과의 무역을 담당하는 어느 무역회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루마니아어 및 터키어에 능통하였던 콜취츠키는 무역회사의 통역원으로 발칸 지역을 넘어 현재 터키의 선조인 오스만 제국까지 출장을 다닐 정도로 회사의 유능한 일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렇게 활발히 회사의 통역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던 중 17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공습이 시작되는데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비롯하여 폴란드 또한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으로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폴란드는 합심하여 오스만 제국과 혈투를 벌이던 중 콜취츠키는 본업을 내려놓고 본인의 조국 폴란드를 위하여 오스트리아-폴란드 연합군에 가세합니다. 한때 본인의 무역회사가 오스만 제국의 커피 원두와 제조 기술을 가지고 무역을 하였기에 연합군에 들어간 콜취츠키는 한 가지 전술을 고안하게 됩니다. 전술의 내용은 바로 본인의 본업이었던 '상인'과 '통역원'의 역할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술을 마음에 들어 하였던 연합군 사령부와  폴란드 국왕인 '얀 3세 소비에스키'는 콜취츠키를 신뢰하면서 특명을 부여합니다. 터키어에 능통하였던 콜취츠키는 본인을 오스만 사람으로 위장하고 무역을 통하여 얻은 커피 원두와 제조 기술을 통하여 터키식 커피를 만듭니다. 곧이어 콜취츠키는 오스만 제국군이 포위하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빈에 임시로 조그마한 '오두막 커피집'을 급조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을 '터키식 커피 상인'이라 부르고 최전선을 돌면서 오스만 제국 군사들에게 터키식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본인의 오두막 커피집을 홍보합니다. 전쟁 중 고향의 커피맛을 느낄 수 있었던 오스만 제국 군사들은 콜취츠키 커피에 현혹되었고 삽시간에 오스만 군사들을 이끄는 군사 본부에까지 소문이 퍼지게 되는데요. 이로 인하여 오스트리아 빈에 임시로 만든 오두막 커피집의 소문을 듣고 오스만 제국 군사 고위 간부들이 손님으로 들어오게 되고 무료로 터키식 커피를 제공하면서 콜취츠키는 오스만 군사 고위 간부들과 친목을 다집니다. 이는 고위 간부들을 단골손님으로 만들게 되고 하나둘씩 본인들의 애환을 콜취츠키에게 터놓기 시작하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위 간부들은 콜취츠키에게 군사 기밀들을 누설하는데 이 중 하나는 곧 본인들이 이끄는 군사들이 이미 비엔나를 점령하였기에 보초병만 남기고 비엔나를 떠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콜취츠키는 커피 상인으로 위장한 첩자였기에 이 기밀을 오스트리아-폴란드 연합군에 넘기고 이 말을 전해들은 연합군은 군대를 둘로 나눕니다. 하나의 군부대는 은폐시키고 또 다른 연합군의 군부대는 오스만 제국의 보초병만 남아있는 비엔나를 점령군이 떠나는 즉시 공습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도중 보초병들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오스만 제국의 점령군은 행진을 멈추고 즉시 비엔나로 되돌아가려 하는데, 은폐시켜놓았던 또 다른 연합군의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되돌아가는 오스만 점령군을 뒤에서 공격합니다. 이에 당황한 점령군은 갈팡질팡하다 졸지에 샌드위치 식으로 둘러싸여 점멸하게 되지요. 이는 비엔나의 재탈환으로 이어지게 되고 후에 이어질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합군에게 어마 무시한 승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이에 오스트리아-폴란드 연합군은 콜취츠키를 장교로 임명하고 막대한 보상을 하지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막아내고 종전이 선언된 17세기 말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였던 '오닷 (Johannes Theodat)'이란 이름의 어느 상인이 나타납니다. 이 상인은 콜취츠키의 오두막 커피집을 본떠서 비엔나에 커피집을 새로 세우는데, 이 당시 이 커피집이 비엔나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현재 '비너 카페하우스'의 시초로 자리매김하지요. 콜취츠키의 잔꾀에서부터 시작되어 테오닷이란 상인이 상업화시킨 비엔나 커피집은 이후 주로 클림트, 에곤 쉴레 등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의 토론 공간으로 변모하고 단순히 여가 생활 즐기는 곳이 아니라 한때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는 군사 기밀을 주고받았던 공간답게 긴밀하고 심도 높은 대화가 오가는 장소로 여겨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