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정보>
사소하지만 오스트리아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다섯 번째 편'
슈테판 대성당과 와인
수도 비엔나 중심에 위치한 '슈테판 대성당 (Stephansdom)'은 오스트리아의 제 1 국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성당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은 오스트리아 전체에서 대단합니다. 슈테판 대성당을 관리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 해 동안 무려 250만 유로 (약 32억원)에 준할 정도로 보수 및 보존에 각별히 국가에서 신경을 쓰지요.
15세기 중반 슈테판 대성당의 확장 및 보수 공사가 진행중인 당시 심각한 기근으로 오스트리아 전역에 있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재배하고 있었던 대다수의 포도가 씨가 마릅니다. 이중 살아남은 포도송이로 와인을 만들지만 가뭄으로 포도 자체가 덜 익은 탓에 포도주의 맛이 매우 시큼하였는데요. 변질된 맛 때문에 농부를 비롯하여 일반 백성들이 포도주를 땅바닥에 버리기 시작하자 이를 지켜본 합스부르크 황제 '프리드리히 3세 (Friedrich III)'는 포도주를 버리는 행위를 금기하는 칙령을 선포합니다. 버릴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와인을 합스부르크 황실은 대규모로 헐값에 구입한 후 슈테판 대성당의 확장 공사을 위해서 사용하는데요. 건축을 방해하는 석회를 용해하고 벽돌을 붙여주는 접합제인 모르타르를 제조하는데 거두어들인 포도주가 활용됩니다. 이는 대단한 건축 가속화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슈테판 대성당의 확장 공사에 큰 축을 담당하는데요. 현재 성당의 전망대로 이용되는 '북탑(Nordturm)'이 15세기 중반에 회수한 와인으로 지어졌고 이 북탑의 크기가 대성당 면적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기에 슈테판 대성당은 '와인 성당'이란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황실과 코카인
주로 코카나무잎에서 추출한 성분을 화학적으로 생합성을 하여 만든 백색을 띠는 분말인 코카인은 현재 전세계에서 마약류로 분류되어있기에 제조·유통·복용이 모두 불법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코카인이 한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보편적인 치료제로 활용되었습니다. 19세기 '시시(Sisi)'란 애칭으로 불리는 '엘리자베트' 오스트리아 황후는 유년기 시절부터 과잉행동장애 및 우울증 증상을 보였는데요. 이런 오스트리아 황후의 정신적인 장애를 진정시키고 치료하는 목적으로 코카인이 사용됩니다. 황후 본인 여행 일지에도 코카인 가루를 항상 유리병에 담아서 돌아다녔다고 적혀있는데요. 이외에도 19세기 합스부르크 황실의 어린 자녀들이 두통과 감기 증상을 보이면 무슨 오늘날의 타이레놀과 아스피린처럼 코카인을 먹였기에 아이들의 중독 및 환각 증상으로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이든과 독일 국가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포함한 신성로마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강행하자 오스트리아는 비상이 걸립니다. 과거부터 프랑스와 적대국으로 있었던 영국의 국가를 본떠서 교향곡의 대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하이든 (Franz J. Haydn)'은 한가지 곡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 곡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란츠 2세 (Franz II)'의 탄생을 기념하고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를 상대로 건투를 비는 의미에서 '황제의 찬가(Kaiserhymne)'로 부르기 시작하는데요. 현악 4중주로 구성된 황제의 찬가는 현재 빈 1구 중심에 위치한 '미카엘러 광장 (Michaelerplatz)'에서 오스트리아 황실 앞에서 연주되면서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황제의 찬가'는 오스트리아의 국가로 자리매김하지만 20세기 초반에 터진 1차 세계 대전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붕괴되고 공화제로 접어들면서 '황제의 찬가'는 위기를 맞닥뜨립니다. '황제의 찬가' 가사 자체가 황제를 찬양하는 내용이기에 군주제를 부정하는 공화제를 선택한 오스트리아는 가사를 바꾸게 되는데요. '케른슈토크 (Ottokar Kernstock)'란 오스트리아의 시인이 '끝없는 축복이 있기를 (Sei gesegnet ohne Ende)'란 제목으로 '황제의 찬가'를 개사하여 오스트리아의 국가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한편 하이든의 황제의 찬가가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신성 로마제국의 구성원이었던 독일 역시 이 곡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19세기 초·중반에 태어난 독일의 시인이자 대학 교수였던 '팔러스레벤 (Hoffmann von Fallersleben)'이 쓴 '독일인의 노래 (Das Lied der Deutschen)'란 시에다가 하이든의 황제의 찬가 선율을 덧붙히면서 20세기 초·중반 독일의 공식적인 국가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유인 즉슨 '독일인의 노래'란 가사 자체가 국수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이 곡을 공식적인 독일 국가로 밀어붙였기 때문이지요. 오스트리아에서는 '끝없는 축복이 있기를'이란 명칭으로 독일에서는 '독일인의 노래'란 명칭으로 하이든의 황제의 찬가는 새롭게 불리기 시작합니다. 즉, 똑같은 선율에 가사만 다른 노래가 탄생하면서 기상천외한 상황이 펼쳐지는데요. 그러나 20세기 초·중반 독일 나치당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하면서 오스트리아 내에서 '끝없는 축복이 있기를'이란 가사를 금지시키면서 오로지 '독일인의 노래'의 가사로 부르도록 강요합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전하였지만 독일에서 '독일인의 노래'만큼은 그대로 보존하여 현재의 독일 국가로 불려지고 있는데요.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독일 나치당과의 강제 합병으로부터 풀려나긴 했지만 국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이 전에 불렀던 '끝없는 축복이 있기를'이란 가사로 재창하기에는 한번 실패한 정권의 노래였기 때문에 치욕스럽다고 생각하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에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홀처 (Johann Holzer)'가 작곡한 곡에다가 한때 독일 나치당에 항쟁하였던 '프레라도비치 (Paula Predadovic)'란 오스트리아 소설가가 쓴 '산들의 나라, 강이 흐르는 나라 (Land der Berge, Land am Strom)'란 서정시를 덧붙여서 선율과 가사 모두 이전과 다른 새로운 국가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생기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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