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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의문의 사나이 프란츠 카프카

<오스트리아 정보>


며칠전 책장을 뒤척이다 빈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할 때 읽었던 여러 문헌들을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게 되어 학사 시절의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면서 감회가 남달랐는데요. 그 문헌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뜨였던 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프란츠 프카의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 (Brief an den Vater)'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독어독문학 재학 시절 오스트리아의 근·현대 문학 강의에서 잠깐동안 카프카에 대하여 수업을 들었었는데 당시 수업을 진행하였던 교수님이 '의문의 사나이'라고 카프카를 묘사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제국령이었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비관적인 주제'로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며, 역설적인 문체로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호 중에 한 명으로 거론되지요. 카프카만의 독특한 문체와 작품은 하도 '충격적'이라 '카프카적인 (kafkaesk)'이란 신조어도 독어권에서 생겨날 만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의 원본 일부

카프카만의 어둡고 염세적인 세계관은 그의 대부분 작품에 투영되었고 이러한 자기 연민과 본인의 신세를 규탄하는 사고는 카프카의 부친인 '헤르만 카프카 (Hermann Kafka)'로부터 기인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카프카부자 사이의 관계를 아들인 프란츠 카프카는 100장이 넘는 편지에 자필로 빼곡히 묘사하였는데요:

"Deine äußerst wirkungsvollen, wenigstens
mir gegenüber
niemals versagenden rednerischen
MIttel bei der Erziehung waren:

Schimpfen, Drohen, Ironie, böses Lachen und Selbstbeklagung"
(저를 키우실 때 적어도 저에게 만큼은 백발백중의
효과를 보이는 아버지 당신만의 방법이 있었지요.
그것은 바로 '욕설, 위압, 조소,
짖궂은 웃음 그리고 신세 한탄'입니다)

위에 적힌 편지의 일부를 인용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카프카의 부친은 권위적이며 강압적인 대장부의 성격을 지닌 탓에 소심하고 내성적인 카프카를 다방면에서 속앓이를 시킨 장본인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이 외에도 편지에서 카프카의 유년 시절 어린 자식의 관심사에 아버지라는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카프카가 본인의 작품을 아버지에게 소개하였을 때 '단 한 번의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며 본인의 부친을 교만한 냉혈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내성적인 카프카는 더욱더 내성적이고 소심해지기 시작하였고 본인의 학창 시절과 대인 관계가 아버지 때문에 망가졌다고 편지에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는 카프카의 대표작 '신 (Die Verwandlung)'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내용의 주인공인 '그레고어(Gregor Samsa)'가 흉측한 벌레로 하루아침에 변신하였을 때 이전에 어디서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던 주인공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앞장서서 그레고어를 핍박하고 내쫓으려 하며 심지어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그레고어의 상처가 덧나 감염으로 사망하는 지경까지 다다르지요. 대표작에서 볼 수 있듯이 카프카의 부친은 언제나 필요할 때는 옆에 없고, 아들을 오로지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파렴치한 인물있었기에 카프카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원망과 비탄으로 피폐해졌을지 그려집니다.

카프카 부친 헤르만 카프카

하지만 의아하게도 카프카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심지어 카프카 생전에 친했던 학우, 직장 동료들의 진술들은 카프카 머리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요. 카프카의 죽마고우이자 본인 작품들을 출판하였던 '막스 브로트(Max Brod)'는 카프카 부친을 '굉장히 친화적이며 누구에게나 우호적이고 활발한 긍정적인 인물'로 평가합니다. 카프카의 부친은 유대인으로서 원래 정육사의 아들로 태어나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자수성가를 이루고 부잣집 출신인 아내와 결혼하여 장남인 프란츠 카프카를 출산하지요. 카프카 부친 본인의 근성으로 자수성가를 이루었고 이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였기에 장남인 카프카 역시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소설가의 길' 대신에 '교수, 법조인 등의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이 되기를 바랐기에 어느 정도의 압박이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카프카의 편지에서 처럼 '막무가내에 모욕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주변인들이 진술하는데요. 이러한 압박은 순수 교육열에서 비롯한 것이지 아버지 본인이 아들을 증오하고 폄하하고 싶어서 행한 것은 아나리고 카프카의 주변인들과 학자들은 분석합니다. 물론 아버지를 옹호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잣집 딸이 부인이고 아버지 또한 자수성가한 인물이기에 이 정도 교육열은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당연히 이렇게 아들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는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마는 '조소, 억압, 모욕'이란 극단적인 단어들로 부친을 묘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 점 외에도 학자들을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카프카의 결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는 카프카가 사망하기 5년 전에 쓰였다고 하는데 이 당시 '보리체크(Julie Wohryzek)'란 체코 출신의 유대인 여성과 약혼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 여성의 가정환경과 집안이 별 볼일 없어서 자수성가로 부유해진 카프카 부친에게는 썩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배우자의 기준을 오로지 사회적 위치와 물질로만 판단하는 카프카 부친이 일차적으로 틀렸지만 '부유한 가정 출신이고 법조인이자 장남인 카프카'가 이런 별 볼일 없고 번듯한 교육도 받지 못한 여자와의 결혼을 세상 어느 콧대 높은 아버지가 쌍수 들어 환영할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편지를 쓴 이유가 순수 '아버지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고발하려 했다기보단 아버지가 카프카의 결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였기에 홧김에 즉흥적으로 작성하였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하는데요.

 

"Fasst Du Dein Urteil über mich zusammen,
so ergibt sich, dass Du mir zwar etwas geradezu

Unanständiges oder Böses nicht vorwirst,
(mit Ausnahme vielleicht meiner letzten Heiratsabsicht),
aber Kälte, Fremdheit, Undankbarkeit."
아버지 당신이 내게 행한 꾸지람들을 살펴 보면
(아마 최근에 있었던 결혼 의사를 제외하고는)
나의 무례한 점 혹은 못된 점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차갑고, 어색하고, 감사함을 모르는 성격을 나무랐지요.

 

위 편지글에서 보다시피 카프카는 아버지의 성격, 외모, 풍채 등은 거침없이 비판하는 반면 정작 부자관계에 있어서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결혼 문제, 가치관의 문제, 장래희망의 문제'와 같은 대립점들을 언급할 때는 항상 카프카는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는데요. 이를 증명하듯이 편지에서 'Vielleicht (아마도)'라는 독일어 부사를 이런 심각한 문제를 수식하면서 30번 가까이 사용합니다. 오히려 '결혼 문제, 가치관의 문제'같은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정상인데 이런 문제들을 가볍게 또는 두루뭉술하게 진술하는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카프카 본인 역시 '본인의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들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학자들은 판단합니다. 이런 점들을 제외하고도 카프카가 편지에서 진술한 내용과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학자들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중 대표 격으로 카프카는 이 편지를 정작 자신의 인생을 망친 장본인인 부친에게 송신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카프카의 진술에는 여러 가지 모순들이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본인은 항상 '학교에서 낙제 위험이 있는 문제아'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당시 카프카의 학우들은 카프카를 '성실한 우등생'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카프카가 노동자 상해 보험 공단에서 법조인으로 근무하였을 당시 늘 본인을 '해고당하기 일보 직전에 놓여있는 사람'이라고 일컫지만 회사 동료들은 카프카를 '누구보다도 우수하기에 회사에서 장려금까지 받는 모범적인 사원'이라고 칭하지요.

프란츠 카프카

이렇게 현실과 본인 진술 사이에서 심각한 온도차를 보이는 이유는 카프카라는 사람 자체도 매우 내성적이지만 오스트리아령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서 본인은 그 어떠한 나라에도 속하기가 힘들다는 '정체성의 혼란'에 더하여 유년기부터 '신경 쇠약과 망상 장애'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계기로 학자들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가 너무 주관적으로 쓰였기에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라고 분석합니다. 물론 카프카와 카프카 부친 외에는 그들이 어떠한 관계에 처해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 카프카 부자가 갈등이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에 관하여 진술한 카프카 자신도 굉장히 주관성에 치우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요.
제가 독어독문학에 재학할 당시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카프카 같이 오스트리아 근·현대 문학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없지만 이와 동시에 카프카만큼 큰 물음표(großes Fragezeichen)를 지닌 인물 또한 없다"라고 묘사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저 또한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