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정보>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화젯거리 중 하나는 바로 부동산 가격, 즉 '집값'에 관한 소식들인데요. 예전보다 한국의 부동산 시세가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많이 올랐다고 그러지만 저는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실재적 피부로 와닿게 공감하기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동산, 집값과 관련한 이야기, 소식들을 접하다 문득 제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집값은 어떨까 찾아보니 의아하게도 부동산 시세가 비쌀 것 같다는 인식이 강한 서유럽에서 오스트리아의 집값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심지어 우리나라와 비교하였을 때도 집값의 격차가 상당했습니다.
부동산 시세와 관련하여 자료를 찾다보니 한 자본 평가 사이트에 올라온 도표를 보게 되었는데요. 역시나 인식뿐만 아니라 실재로도 유럽의 집값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하였습니다. 그중 놀라운 것은 1 제곱미터당 평균적인 집값이 한국은 일본보다도 높은 12.810 호주달러(약 1100만 원)로 세계 기준에서 대략 3-4위에 선정되었던 점인데요.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1 제곱미터당 7000 호주달러(약 600만 원)의 가격을 평균적으로 지불해야 되는 것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이트가 평가를 내릴 때 여러 가지 다른 상세하고 세부적인 요소들을 포함하였다고는 할 수 없지만은 눈대중으로 비교 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부동산 가격은 얼추 '2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아무리 한국이 비싸다고 하여도 2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질 줄은 몰랐고 어째서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할까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이 들 수 있습니다.
요제프 2세의 계몽주의 (Josephinismus)
18세기 초반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은 특정 권력자, 즉 황실에 의한 절대주의(Absolutismus)로 통치되었습니다. 허나 오스트리아 제국 내 카톨릭 성당만큼은 이런 오스트리아의 권력층과는 무관한 독립성을 띄었는데요. '독립성'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천주교가 오스트리아내에서 끼치는 영향은 황실에 버금갈 정도로 막강하였습니다. 아무리 16세기에 유럽에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여전히 천주교를 따르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카톨릭 성당의 권력을 줄이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천주교계가 교육을 넘어 실질적인 봉건과 정치에 상당히 관여를 하였기에 황실과 더불어 마치 오스트리아에선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뜬 것'과 같은 상태였지요. 그러나 이를 몹시 뜳어했던 한 모자가 있었는데요,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 대공과 아들 요세프 2세'. 이 둘이 오스트리아 황실을 이어가자 가장 먼저 펼친 정책중에 하나가 바로 천주교의 갑질과 권력을 약화시키는 일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1대 1로 맞짱(?) 뜨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두 모자는 본인의 정책에 힘을 실기 위해 백성들의 조력이 필요했던지라 '민심'을 사기 위해 백성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정책을 선보이는데 그중 '교육 및 주택' 관련한 혜택들이 민중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우선 천주교가 휘어잡고 있던 대학 교육에서 학비를 낮춤으로서 특정 상위층의 특권이었던 대학 교육을 일반 백성에게 교육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고 이에 더해 의료 시설을 확대 및 강화시키지요.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주택법을 아들인 요제프 2세가 새롭게 도입하여 가난한 백성들이 거주하는 집에 대하여 감세 또는 면세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집을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게 하여 보상 및 수리 또한 저렴하게 받을 수 있었지요. 이러한 파격적인 혜택으로 민심을 사로잡은 요제프 2세는 천주교의 권력을 축소시킬 수 있었고 18세기 초중반 천주교가 오스트리아 황실 관할로 들어가 종교의 주체성은 인정하되 의무적인 십일조 폐지와 성당의 토지를 몰수함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국립성당 (Staatskirche)'의 개념이 생깁니다. 이는 '요세프 2세식 계몽적 절대주의 (Josephinischer aufgeklärter Absolutismus)'로 불리게 되고 요세프 2세가 펼친 주택법이 오늘날 오스트리아 공립 주택의 시초 격으로 자리잡게 되지요.
공립주택의 설립 (Gemeindebau)
요세프 2세는 '백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펼치지만 백성들에 의한 정치는 안된다는 (Alles für das Volk, nichts durch das Volk)' 좌우명으로 정책을 내세웠습니다. 아무리 백성 친화적인 정치를 했어도 좌우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백성이 관여하는 정치는 반대하였던 요세프 2세의 절대주의는 19세기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졌던 민주화 혁명인 '3월 혁명 (Märzrevolution)'등으로 줄어드는 동시에 민주 체재에 대한 백성들의 갈망이 커집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일보 직전인 191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한 집값 상승으로 주거지를 구하기가 몹시 힘들어지는데요. 이는 금적전으로나 신분으로 보았을 때 가장 열세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노동자들이 도로 위에서 노숙을 하는 형태가 빈번했습니다. 이에 일반 백성들과 노동자들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때쯤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1918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이 패전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절대주의는 온전히 모습을 감춥니다. 대전 후 공화제를 채택한 오스트리아는 노동자 조합과 일반 서민들의 주축으로 설립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 (Sozialdemokratische Arbeiterpartei)'이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식 민주 체재를 도입합니다. 절대 권력을 배척하는 사회주의를 따랐던 오스트리아는 아무리 요제프 2세가 절대주의의 통치자였어도 이 사람이 펼친 '주택법'만큼은 계승하였고 여기에 마르크스 사상을 더하여 노동자에 대한 복지와 혜택의 명목으로 오스트리아의 절반 그리고 빈 시의 3분 2에 달하는 주거지를 국가에서 매입하여 공립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지어진 건물과 주거지들은 개인이나 단체가 소유할 수 없고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토지에 대한 투자 또한 전면 금지시킵니다. 이에 수많은 노동자 및 금전적으로 어려웠던 서민들은 제국 시절 집값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월세 가격으로 주거할 수있게 되었고 1919년부터 1934년까지 토지와 여러 부동자산들은 오로지 국가 관할 및 소유로만 인정되었던 시절을 '붉은 오스트리아 (Rotes Österreich)', '붉은 빈 (Rotes Wien) 시절'로 부르게 되지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는 점점 자본주의식 민주체재로 바뀌어가고 수많은 기관들이 민영화로 전환되지요.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단 한 가지만큼은 온전한 민영화로 전환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오스트리아내 부동산 및 토지이고 이와 관련하여서는 아직까지 사회주의식 국영화를 고집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하여도 특정한 건물 또는 토지를 함부로 쉽게 매입할 수 없으며, 심지어 본인의 재산으로 건물/토지를 매입하였어도 엄격한 국가 통치 아래에서 관할되기에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땅 사서, 건물 사서, 집 사서' 돈 벌기는 굉장히 어려운데요. 개인 소유의 건물 및 토지인 경우 지출하는 관리비와 세금이 한국의 몇 배 이상으로 높고 별의별 제약도 큰 관계로 부동산 관련 사업을 펼치기에는 장애물들이 극히 많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현재까지도 공립주택(Gemeindebau)의 비율이 사립 주택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요. 웃긴 건 이런 공립 주택에 들어가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무한테나 내어주지 않고 EU-시민은 입주가 아예 불가능하며 오스트리아 국민과 합법적인 체류증을 가진 제3 외국인 중 '장애, 일인 부모 가정, 저소득층' 여부를 판단하여 입주가 가능합니다. 이게 말만 공립 주택이지 '시설, 관리, 치안'이 일반 사립 주택만큼 잘 되어있고 집값은 사립 주택의 3배 정도로 저렴하기에 절반 이상의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공립주택에서 거주합니다. 이런 부동산에 대한 억센 제약들, 공립 주택의 장점들로 인하여 오스트리아에선 본인 개인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 관계로 만약 '내 집 마련'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한다면 오스트리아 사람들한텐 굉장히 동떨어진 이야기로 받아들 일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사람들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오스트리아에선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리고 건물주 위엔 지방자치주(Bundesland)"로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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