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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일상기/거리리뷰

<오스트리아 후기> Kärntnerstraße/ 케른트너거리 및 빈 시내 -2부-

<오스트리아 후기>

그럼 저번에 이어 다시
이 장소에서부터 시작해 볼까요?

 

점점 인파가 늘어나는 게 보이실 텐데
여기 또한 '케른트너거리' 만큼
명소이기 때문이죠.

그럼 계속 가보도록 합시다.

 

이런 아담하고 (오늘따라 유난히) 깔끔한
느낌의 골목 또한 힐끔힐끔
봐주면서 가다 보면

(저 개인적으로는 케른트너거리의 골목보다
이 골목들이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 ㅎㅎ)

 

저 앞에 금동상과 새로운
명소의 진입로에 다다릅니다.
바로 '라벤(Graben)'인데요.
이 거리 또한 오스트리아 빈에서
'케른트너거리'와 더불어 깊은
역사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그라벤'이란 단어는 독일어로
'땅굴', '벙커'란 뜻인데 지금의 관광명소란
느낌과는 굉장히 동떨어져있지요?

로마제국의 빈도보나(Vindobona) 군사기지 도면

이유는 2세기경, 즉 로마제국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 당시 빈은 로마제국의 '도보나'라는
이름의 '영 지대(Castra)'였습니다.

'빈 (Wien)'이라는 도시명 또한 로마제국의
병영지 '빈도보나'에서 유래되었지요.

군사기지 빈도보나의 설립

그중 '그라벤'은 로마 병사들의
'무기 저장소'외에
'요새' 또는 '지상 벙커' 역할을 도맡았는데요.

원래 '군사 벙커/무기 저장소'였던 터라
이 장소는 '그라벤'이라는
이름이 후에 붙은 거지요.

하지만 아무리 1800년 전 일이라고 하지만
'군사 벙커'였던 곳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평화롭고 평탄한' 장소가 되었을까요?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로웬허츠 (Richard Löwenherz)

로마제국 붕괴 후 아직까지 '병영지'로
남아있던 그라벤은 12세기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12세기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로웬허츠'는 십자군 전쟁에서
배 타고 귀환하던 중 배가 난파되어
바벤베르크(오스트리아 선조) 땅에
덜어지게 되는데요.

난민 주제에 남의 나라 땅에서
"나 왕이야 이것들아" 하면서 깝치다(?)
바벤베르크 사람들한테 끌려가는데요

끌려간 곳은 바로 '그라벤'

원래 '그라벤'이라는 곳이 더 이상 병영지로
필요가 없었던 바벤베르크 사람들은
이 지역을 새롭게 개발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세금과 자원이 필요했지요.
그때 마침 깝치다 여기로 끌려온 잉글랜드
왕을 본 바벤베르크 사람들은
"얘를 어떻게 조질까?" 머리를 굴리다,
잉글랜드한테 몸값을 요구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벤베르크는 12세기경 잉글랜드한테
삥 뜯은 돈과 자원으로 '그라벤' 개발을
본격화하는데요. 옆 동네에 무역 거리,
'케른트너거리'가 들어섰으니 이에 발맞춰
'거대한 시장 및 상업'거리로 발전시킵니다.

그리고 빈이란 도시 전체를
이 자금으로 확장 및 강화시키죠.
(당시 잉글랜드 전체가 왕의 몸값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즉, 12-13세기의 그라벤은 '병영지'에서
'상업거리'로 온전한 탈바꿈을 합니다.

페스트기념비 (Pestsäule)

이렇게 역사는 흐르고 또 흐르니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계속 가줍시다.

그라벤 중간쯤 들어서면 위 사진처럼
금동상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바로 17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강타했던
'페스트'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동상을 지나 이런 골목 또한
힐끔 봐주면서 앞으로 가주면

 

약 400년 가까이 된 정면의 붉은색
견물에서 왼쪽으로 꺾어줍시다.

 

'콜마크트(Kohlmarkt)'란 거리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참고로 이 거리는
유럽의 오만 명품점들이 다 들어서 있습니다.

관심 없으니 저 중앙에 있는
푸른 지방 쪽으로 직진합시다.

 

푸른 지붕과 점점 가까워지다 보면

 

골목 옆 케이크 및 커피 전문점 데멜 (Demel)

콜마크트거리 끝자락쯤 케이크집이
하나 보이는데 18세기의 지어진
이 케이크집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 직속 제과 및 제빵사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한 지나가면

 

'하엘러 광장 (Michaelerplatz)'이 나옵니다.
앞에 푸른 기둥은 '미하엘러 대문 (Michaelertor)'으로
여기로 들어가면 황제의 관저가 있었던
'호프부르크(Hofburg)'로 이어지지요.

 

미하엘러 성당(왼), 미하엘러 광장 옆모습(오)

대문으로 향하다 보면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 카타콤과
약 8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하엘러 성당 (Michaelerkirche)이' 보입니다.

 

대문 앞 로마제국의 카나베 (Canabae)

이런 약 2천 년 전 로마제국 군사기지의
'민간인 거주지(Canabae)' 또한 지나가 줍시다.
로마 병사들의 가족들이 살았다고 하네요.

 

대문으로 들어가 주면

둥근 아치형 지붕을 가진
대문 내부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잠깐 내부를 살펴보면

 

승마학교 (왼), 시시 박물관 (오)

이런 유네스코 선정 문화유산인
'스페인 마학교'와 엘리자베트 인 바이에른 공작
일명 '시 박물관'이 있네요

 

대문 반대쪽으로 나가다가 보면
알레고리풍의 석상들이 보이는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를
기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어쨌든 다시 반대편 문으로 나가줍시다.

 

나가주면 이런
'호프부르크 내부 (In der Burg)'가 나오는데
지금은 그냥 통행로의 불과하지만 과거에는
'제국사무청(Reichskanzleitrakt)'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저 앞쪽에 무슨 동상 하나가 보이는데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 또한 마련돼 있습니다.
"나의 백성에게 사랑을 (amorem meum populis meis)"
이라는 라틴어 글귀도 쓰여있네요.

그리고 이 동상 앞에는

 

무슨 입구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부르크예배당 (Burgkapelle)'의 입구입니다.

 

부르크예배당 입구 천장

약 13세기에 지어진 이 예배당은
15세기에 다시 재건축이 들어갔고
이후 여러 성직자들이 공식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을 대표하는
임명식 또한 치러졌다고 하네요.

부르크예배당 안쪽 마당

그럼 여기서 돌어서 다시
호프부르크 내부로 나가줍시다.

 

이렇게 호프부르크 내부에 있는
통행로로 지나가 주면

 

'프부르크(Hofburg)'가 나옵니다.

13세기 후반 대공 레오폴드 6세의
칙령으로 건립된 호프부르크는 오스트리아가
사회민주공화제 도입 전인
20세기 초반까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실의 거주지였는데요.

근데 왜 이상하게 이름이 '호프부르크'일까요?
직역을 하면 황실(Hof) + 요새(Burg)인데
황궁도 아니고 어째서 '요새(Burg)'였을까요?

방금 전 '그라벤' 이야기를 했을 때
잉글랜드 찐따왕(리처드 로웬허츠)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삥을 뜯었고
그 자금으로 '도시 확장' 또한
했다고 말씀드렸었죠?

13세기 당시에도
바벤베르크 (오스트리아 선조) 국고에는
잉글랜드 찐따왕한테 받은 몸값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남아있는 몸값으로 빈의
'도시 확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요.

도시 확장을 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었고, 그중 병사들도 많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도시 확장'에만 몰두하다 보면
주변국으로부터 위협이 올 수 있으니 먼저
'국방'에 특히나 신경을 쓰는데요.

당시 빈시장벽 (Wiener Stadtmauer) 도면

로마제국 시절부터 있었던 '빈도보나' 병영지를
토대로 13세기에 국방을 위해 '재개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빈을 둘러싼
장벽을 먼저 짓는데요.

'빈 시장 벽'이라는 거대 장벽을 만들고
황제는 더 집중적으로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빈시장벽 중앙에 '황궁'대신 '요새'를 건축합니다.

그리고 이 요새(Burg)가 지금의 호프부르크
즉, '황실 요새'로 전해져 내려오게 된 것이죠.
(13세기 당시 호프부르크는 요새였기에
지금처럼 땅이 평평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비엔나에 있다 보면 역 이름 중
Stubentor, Schottentor, Burgtor 등
'Tor(대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역을
종종 볼 텐데 이는 '빈 시장 벽'의 외부로
그 당시 연결되는 대문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그럼 헛소리는 그만하고 주위를 둘러볼까요?
위에 사진에 시커먼 건물 2개가 보이는데
바로 국회의사당 분점(?)입니다.

현재 본 국회의사당은 재개발 공사에 들어간
관계로 저기다가 임시로 지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보면 굉장히 후집니다...)

1938년 헬덴광장에서 연설하는 히틀러

그리고 여기가 '헬덴 광장(Heldenplatz)'인데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나치 독일 합병 때
연설한 곳으로 유명하지요.

국립도서관 (Nationalbibliothek)

이 헬덴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국립도서관도 위치해 있네요.

그럼 헬덴광장 남쪽으로
가로질러 가줍시다.

이렇게 가다가 왼편을 보면

외부로 연결된 '대문(Äußeres
Burgtor)'이 보이네요
참고로 저기로 나가면 링슈트라쎄입니다.

그럼 계속해서 헬덴 광장 남쪽으로 가봅시다.

'카를 대공'의 기념비를 지나

 

국회의사당 분점(?) 또한
지나 계속 남쪽으로 가주면

 

이런 골목과 함께

폭스정원(Volksgarten)과 그 내부

폭스정원이 나오네요.

 

또다시 이 정원을 지나 오른편으로 가다 보면

연방수상청(Bundeskanzleramt)

총리 쿠르츠가 있는 곳이 나옵니다.

그리고 계속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은

 

유럽 및 연방국제사무부 (Bundesministerium für europäische und internationale Angelegenheiten)

여러 관청들이 나오고 또 이런
관청을 마주 보고 있는
무언가가 또 있는데

 

바로 13세기에 완공된 '미노리텐성당'
(Minoritenkirche)이 마주 보고 위치해 있네요.

 

미노리텐성당 정면

미노리텐(Minoriten)이란건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천주교 수도회로 알고 있는데
'어린 형제들'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이 성당 주위를 돌다가

 

이런 골목이 나오면 들어가 줍시다.

 

'헤렌가쎄 (Herrengasse)' 거리가 나옵니다.
이 거리 저 앞 오른쪽에 붉은 깃발이 보이는데
'페어스텔관저(Ferstel Palais)'입니다.

 

페어스텔 (Heinrich von Ferstel)

약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 빈의
유명한 건축가 '페어스텔'에 의해
지어진 저 건물은 원래 그 당시
'은행 및 증권거래소'였다고 하네요.

저 건물 통로(Ferstel Passage)로 들어가 봅시다.

통로로 들어서면 전면에 분수대가 보이는데요.

 

이렇게 분수대를 지나가 주면
앞에 출구가 보입니다.

그리고 출구로 나가주면

바로 '프라이웅(Freyung)' 거리로 들어섭니다.

 

통로에서 나와 왼편으로 꺾어주면
저 앞에 무슨 성당이 또 하나 보이는데

 

쇼텐성당 (Schottenkirche) 옆면 (왼), 성당 정면 (오)

성 베네딕도회의 쇼텐성당이 보이네요
약 12세기경 바벤베르크의
한 백작이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당 바로 왼쪽에는
쇼텐수도원(Schottenstift) 또한 자리 잡고 있지요.

그럼 저 수도원 왼쪽에 있는
길로 가줍시다.

 

이런 예쁜 전통적인 빈의 골목을 지나

 

수도원 옆길로 들어가 줍시다.

 

이 길에서 직진만 해주면 뭔가
우리한테 익숙한 곳이 또 하나 나오는데

 

바로 저번 링슈트라쎄 편에서 다뤘던
'쇼텐토어(Schottentor)' 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옵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쭉 직진하여
트램 타고 집에 갈 수 있겠네요.



그러나


옆을 보니 우연찮게 제가 좋아하는 아담한
유기농 아이스크림 집이 나오는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스크림 한대
더 빨아줘야겠네요 ㅎㅎ

아놔, 아줌마 뭔 아이스크림 주문을 10분을 넘게 해요--

이렇게 줄을 서서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으로 시작한 오늘의 여정
다시 아이스크림으로 끝내야겠네요 ㅎㅎ

 

 

 

  글을 마치며..

 

 

모든 길이 평평하기 때문에 넉넉잡고
2시간 정도로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산책해도
웬만한 오스트리아 빈 중심가의 명소는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골목들이 있는데 여기 또한
굉장히 이쁜 관계로
나중에 시간 제약만 없다면
빈 시내 '골목탐방'도 해봐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