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후기>
이번에는 빈 근교로 한 번 가보려고 합니다.
수도 비엔나 북쪽으로 도나우 연안과
밀접하여 있는 도시로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알려져 있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라는 도시인데요.
언제나 그랬듯 슈넬반을 타고
'클로스터노이부르크 키어링 (Kierling)'이란
역에서 하차하여 빠져나가 줍시다.
참고로 이 도시는 상당히 면적이
넓은 관계로 이 도시에만 슈넬반
역이 3개나 되지요.
대략 인구 2만8천명의 도시로 면적으로만
76 km²로 중소도시들 중엔 꽤 넓은 편에
속하는데, 이러한 면적에 비하여 인지도
면에서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요.
거리 풍경 자체는 빈이랑 별 반 차이가
없어서 거리를 산책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만, 딱 한 가지 이 도시가
오스트리아내에서도 자랑할만한 무언가가
위치해 있는데요. 조금 있다가 그 장소로
가 보도록 하고 우선 빈과 비슷한
거리를 조금 돌아다녀봅시다.
이 도시가 거리로는 내세울 점은
딱히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사만큼은
오스트리아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인데요.
기원전 9000년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였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로마시대에는 군 병영시설로 이용되었고
'카를 대제(Karl der Große)'가 8세기경
슬라브계 아바르 민족을 물리치고
새롭게 설립한 이 도시는 12세기에
사람들이 고원에다 농경지를 확보하여
본격적인 토착화가 시작되면서
고원의 위치한 이 도시가 마치 요새와
비슷하다 하여 '노이엔부르크(Neuenburg)'
즉, '새로운 요새'라는 도시명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12세기 초반에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내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데,
이유는 바로 '레오폴드 3세(Leopold III)' 백작의
거주 도시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도나우강이 인접하여 있기에 범람의
위험은 있었지만 무역의 교점지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도나우라 굉장히 부유한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위 사진처럼
이 '도시의 역사를 담은 거리(Historienpfad)'들이
속속 나오는데 외관상 그다지 볼품은 없기에
제일 그나마 예쁜 과거의 시장이었던
'아랫시장길(Niedermarkt)'로 빠져줍시다.
이름이 아랫시장인 이유는 고원에 지어진
도시가 과거에 아랫마을, 윗마을로 나뉘었는데
주로 평민들이 거주하였던 아랫마을에
시장이 있었기에 이렇게 불려졌다고 하네요.
이 도시의 과거명인 노이엔부르크로
13세기까지 하나의 큰 고원도시로 유지되었으나
'알브레히트 1세(Albrecht I) 대공'이 새롭게
정권을 잡으니 노이엔부르크는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도시의
'분할'입니다. 알브레히트 1세 또한 이 도시에
본인의 관저를 짓고 싶었기에
도시를 새롭게 개발하는데요.
12세기 레오폴드 3세의 관저가 있었던 지역을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로 13세기
알브레히트 1세의 의해 새롭게 지어진 관저가
있는 지역을 '코어노이부르크(Korneuburg)'로
부르면서 과거의 '노이엔부르크'르는
두 지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지금 현재 제가 있는 곳은 레오폴드 3세의
관저가 있었던 '클로스터노이부르크'란 도시고
위 사진처럼 언덕을 올라가 과거 고원
윗마을로 향해 보도록 합시다.
언덕을 끝까지 올라가 주면
과거의 관저 및 행정부처가 있었던
윗마을이 나옵니다.
직진을 하면서 골목들도 한 번씩 봐주면서
직진하다 보면 페스트비와 함께
과거의 윗마을의 광장이 나옵니다.
현재는 시청 (분홍색 건물)을 비롯하여
여러 도시 기관들이 위치해 있지요.
그럼 이제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랜드마크를 보러 갈 텐데 솔직히
이 것만 보면 이 도시를 다 본거나
마찬가지로 오스트라아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건축물이지요
이 도시가 왜 '클로스터노이부르크'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게 되었는가 또한
지금 보러 가는 건축물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계속 광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앞에
쌍둥이 탑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클로스터노이부르크를
상징하는 건물로 들어서게 됩니다.
바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Stift
Klosterneuburg)'이 나오는데 이 건물이
과거 레오폴드 3세 전용 예배당 및
수도원으로 이용되었지요.
여기가 레오폴드 3세가 지은 '클로스터(Kloster)',
즉 대규모의 수도원이었기에
'클로스터노이부르크'란 새로운 명칭
또한 이 도시는 얻게 됩니다.
12세기 초반에 레오폴트 3세 백작이
본인에 거주지로 이 도시를 채택한 동시에
이 수도원 또한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수도원 앞에는 위 왼쪽 사진처럼
'투츠'란 건축가가 만든 '투츠기둥(Tutzsäule)'이
세워져 있는데, 당시 수도원의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제들을 애도하기 위하여 만든 추모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도원을 대표하는
기념비중 하나지요.
그리고 추모비를 지나가 보면 당시
포도주를 담을 때 필요했던 술통을 만드는
장소도 나오는데 현재 포도주 전문집으로도
사용되는데 19세기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점령하였을 당시
바로 이 장소에서 나폴레옹과 본인의 병사들이
술판을 버렸던 일화로 유명하지요.
포도주 전문집 앞에는 외벽 청소 중인
수도원의 탑이 보이는데 스페인식 관저인
'에스코리알 (Escorial)'의 양식을 빌려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도원의 탑을 지나면
위 사진처럼 레오폴드 3세의 관저가
있었던 장소가 나오지요
그럼 다시 수도원 정면으로 돌아가 줍시다.
그렇게 수도원 정면을 지나서
계속 옆으로 가다 보면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이고
계단을 내려가 주면 수도원의 입구가
나옵니다. 현재 이 수도원은 역사적인
건물이라 '수도원' 외에도 박물관이나
여러 전시회장으로도 쓰이는데요.
수도원 입구 앞에 있는 전망대에서
경치를 한번 봐주고 입구로 들어가 주면
바로 수도원의 박물관이 나오는데
과거 레오폴드 3세 등 합스부르크
황실의 보석들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네요. 돈 내고 들어가라니까
드러워서 다시 나가줍시다.
(뭔 놈의 수도원이 입장권으로 9유로씩이나
받는지 아주 돈독 오른 자본주의식 신앙의
끝을 보여주는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과 이 도시에서 볼일은 다 보았으니
다시 역으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그럼 역에서 보이는 저 수도원의 절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솔직히 이 도시를 대표하는
수도원을 제외하고는 구경거리가
도시 자체에서는 많지는 않습니다만
오스트리아의 현대 미술 박물관과
와인으로도 유명한 도시이기에
시간이 된다면 오스트리아식
전통 포도주 및 음식점인 호이리게 또한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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