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의 경제와 문화를 주름잡는 국가인 미국은 누구나 알다시피 다민족 국가입니다. 원래 미대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원주민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미국인들은 유럽, 아시아 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의 후손이지요. 시초부터 다민족으로 시작한 국가이기에 문화적인 요소 외에도 수많은 언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사용되었고 이런 이유에서 현재까지 미국은 우리나라, 독일과는 다르게 '공용어 (official language)'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영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만 미국의 영어는 단지 행정 언어와 같은 통용어에 불과하지 영국의 영어, 독일의 독일어, 우리나라의 한국어처럼 법적으로 공인된 언어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의 헌법이 순수 보편성을 위해서 영어로 적혀있는 것뿐이지 어떤 법적인 근거를 두고 영어가 사용되는 의미가 아니라는 뜻인데요. 막말로 현재 미국의 헌법이 아랍어, 러시아어, 독일어로 명시되어 있어도 보편성을 제외하고는 그 어떠한 문제점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도 한때 '공용어 설립'에 관련된 여러 논쟁이 있었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심지어 영어도 아닌 독일어가 이런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8세기 중·후반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온전한 자주적인 국가로 거듭납니다. 이에 따라 영국과는 별개인 미국만의 고유의 법들이 제정되기 시작하는데요. 법을 새로 만들고 개정하는 과정 속에서 미국 동부에 위치한 펜실베니아와 버지니아주를 중심으로 영어 대신에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제안이 빈번히 야기됩니다. 이유인즉슨 이 주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일과 오스트라아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이었기 때문인데요. 만약 미국의 헌법이 오로지 영어로만 쓰여있으면 이 두 주에 사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턱이 없기 때문에 헌법이 독일어로 명시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18세기 극 후반 미국 하원에 헌법을 영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고 명시하라는 명목으로 청원을 올리는데, 단지 펜실베네아, 버지니아 이 두 주를 넘어서 미국 동부에 놓여있는 다른 주들 역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이주민들이 상당 부분 거주하였기에 이 청원에 조력합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주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미국 하원 역시 이들 청원에 부응하는데요. 펜실베니아와 버지니아주의 헌법을 독일어로 명시한다는 의안이 제출되고 18세기 극 후반 미국 하원을 구성하는 의원들로부터 투표가 실시됩니다. 마지막까지 가결과 부결을 두고 막상막하의 투표수를 보였지만 딱 1표 차이로 투표의 결과가 펜실베니아와 버지니아 사람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나왔기에 이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됩니다. 동등한 투표수를 보이다가 당시 미국 하원 의장이었던 '멀른버그 (Frederick Muhlenberg)'가 반대에 표를 던지면서 1표 차이로 의안이 안타깝게 부결되지요. 그러나 신기한 건 반대를 한 멀른버그 의장 본인 역시 독일 출신 이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써 영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독일어로 변경하는 데는 무리가 많고 만약 독일어로 헌법을 개정한다면 영국, 스페인, 프랑스 출신 이민자들로부터 항의가 거세질게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불필요한 불화와 오해를 만들지 않고자 멀른버그 의장은 안건을 부결시킵니다. 이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들은 멀른버그에 앙심을 품기 시작하고 이들 중 멀른버그의 처남도 있었는데요. 이에 더해서 미국 독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프랑스를 배신하는 제이 조약 (Jay Treaty)을 미국이 영국과 체결하면서 미국에 경제적인 타격이 시작되고 제이 조약 체결에 멀른버그 의장이 큰 힘을 보태었다는 정황까지 밝혀지자 가뜩이나 독일어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멀른버그의 처남은 멀른버그를 칼로 상해를 입힙니다. 이런 이야기는 독일의 '뢰허 (Franz von Löher)'란 이름의 저명한 역사학자로부터 유래되었는데요. 멀른버그 의장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미국에서 독일어가 영어에게 밀렸다는 뢰허의 주장은 현재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관계로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런 이유에서 뢰허의 주장은 단순히 가설 또는 전설로 남아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처럼 터무니없는 전설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도 이럴 것이 18세기부터 미국의 백인을 구성하는 절대다수와 더불어 '트럼프, 루스벨트, 부쉬, 닉슨, 아이젠하워'등의 미국 역대 대통령 역시 절반 가까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이민자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독일어가 미국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했습니다. 그밖에 19세기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전 세계 과학, 문화, 경제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미치는 영향 또한 미국을 뛰어넘었었는데요. 만약 멀른버그가 의안에 찬성을 하였다면 펜실베니아와 버지니아주를 넘어서 미국 동부에 걸쳐 독일어의 목소리가 높아질 테고 미국 전역에서 영어와 더불어 독일어가 통용될 가능성 역시 농후해질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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