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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리청년의 언어 이야기/독일어 이야기

마틴 루터와 독일어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아느니 [...]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편하게 쓸 수 있게 하고자 하느니라" 

 

15세기 조선 세종이 집현전의 언어학자들과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訓民) 이에 올바른 소리와 문자가 필요하다 (正音)'라는 가치관으로 당시 조선의 사회와 언어체계를 고려하여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지요. 이 문자는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이 명확한 '일시와 창시자'가 기록되어 있고, 그 어떠한 문자보다 과학적으로 구성되어있어 수많은 발음을 간단 명료히 표현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 이 문자는 600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로 발전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언어로 인한 '불편함', 더 나아가 '차별'까지 빈번했던 역사를 지닌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였고 이 논란의 중심에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있었습니다. 

 

  언어의 차별

 

 

우리가 '마틴 루터'라 하면 16세기 초반 종교 개혁자로만 인식하고 있는데 루터는 신학자뿐 아니라 위대한 번역가 및 언어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6세기까지 독어권은 천주교의 횡포와 권력 남용이 하늘을 찌르던 시대였습니다. 문화와 교육은 오로지 천주교로부터 나오고 심지어 돈과 지위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반성경'적인 악행을 일삼았던 16세기의 천주교회는 본인들의 '권력'을 지탱하기 위하여 한 가지를 일반 백성들로부터 금지시키는데요. 바로 '언어 교육'이었습니다. 당시 독어권에서 신분을 구별하는 기준들 중 하나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 없는가였는데요. 거룩한 언어라 불림을 받았던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오로지 성직자들의 산물이었습니다. 모든 학문들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만 되어 있었기에 '독일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일반 백성들이 아무리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려 하여도 천주교에서 '천민들은 감히 신의 언어를 배울 자격이 없다'라는 명목 아래에서 특정 사회 고위층, 즉 귀족들에게만 교육의 문을 열어 두지요. 이러한 천주교의 반성경적인 횡포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 루터였고 루터는 후에  '95개의 반박문 (95 Thesen)'과 함께 종교 개혁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정신이 올바르고 종교 개혁을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루터는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바로 의사전달의 문제였는데요. 당시 독일의 일반 백성들은 교육을 받을 자격이 없어서 문맹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기에 읽거나 쓰지를 못하고 오로지 독일어를 구두로 밖에 구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기에 누군가가 학문과 성경을 가르치려면 '낭독자'가 필수적으로 필요하였고 아무리 독일어를 읽을 수 있는 '낭독자'가 있었다 한들 문헌들과 성경이 모두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되어있어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이 3개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낭독자'가 필요하였지요. 당시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이 언어들에 모두 능통하였던 루터는 종교 개혁과 동시에 '언어 개혁'에 돌입합니다. 아무리 '올바른 학문, 성경 그리고 신앙'을 가르치려하여도 언어의 차별로 인하여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일반 백성에게는 마치 '소귀에 경'읽는 것처럼 아무 의미 없는 행위였기에 루터는 이러한 시국에 한탄을 하며 제일 먼저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루터, 성경을 번역하다.

 

 

16세기 당시 독어권에는 아예 독일어로 번역이 된 성경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허나 이러한 독어 번역본은 '비블리아 불가타 (Biblia Vulgata)', 즉 '통상 라틴어 성경'이라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상황과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순 '직역'만을 한 독일어기에 일반인들이 알아듣기에는 문제가 많았지요.  이렇게 '직역'만이 있었던 이유는 천주교에서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독일어'는 '더러운 돼지들의 언어'라는 인식을 학자 및 성직자들에게 심어놓아 이를 올바르게 번역하는 행위를 금기시했습니다. 루터는 이런 금기들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자 바로 천주교와 국가로부터 핍박과 추방을 받습니다. 졸지에 쫓기는 처지에 몰린 루터는 '융커 외그 (Junker Jörg)'라는 가명으로 '바라트부르크 (Wartburg)'이라는 독일 중부 도시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서 '신약 성경'을 일반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번역에 착수하려 할 때 루터는 한 가지 고민에 빠집니다. 이유인즉슨, 독어권에는 크게 '저지 독일어 (Niederdeutsch)'와 '고지 독일어 (Oberdeutsch)'라는 방언(Dialekt)을 나누는 기준 아래 20가지가 넘는 사소한 사투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는데요. 다행히도 '고지 독일어권'과 '저지 독일어권' 지역 중간에서 태어나 자란 루터는 이 두 방언들을 모두 할 수 있었고 '고지 독일어'를 사용하는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루터와 뜻을 함께하는 고위 관계자 및 학자들과 비밀리에 서신을 통하여 '민족의 말을 보는 (Dem Volk aufs Maul schauen)', 즉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 성경'을 만들기에 필요한 '접점 언어 (Ausgleichssprache)'를 찾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접점에 있는 독일어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는데요. 루터는 마치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고통과 고뇌'로 신약 성경을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번뇌와 고통에 걸맞게 루터가 새롭게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헬라어 원문에 충실한 동시에 '시대를 반영하고,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시적인 운율을 더한' 독일어로 성경이 더 이상 '알아들을 수 없는 딱딱한 문어체'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듣고 읽는 사람들이 마치 '동화'같은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는 책으로 재탄생되지요. 

 

  "오직 믿음으로"

 

 

루터의 변역본이 독어권에서 점점 파장을 일으키자 천주교와 이에 속해있던 학자들은 루터의 독일어 번역본은 '조작과 사기'라며 비하하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루터가 신약 성경을 번역할 때 단어를 지어냈기 때문이라는 건데요. 루터가 신약 성경의 로마서 3장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구절에서 '믿음으로(fide)'라는 단어 앞에 '오직(sola)'이라는 라틴어 부사를 더하여 라틴어로 "sola fide", 독일어로 "Allein durch den Glauben", 즉 '오직 믿음으로'란 어구로 번역을 한 것인데요. '오직'이라는 부사를 없애라고 협박을 하는 천주교에 루터는 본인의 번역은 틀리지 않았다며 오히려 본인이 직접 서한을 보내어 반박을 합니다. 

루터의 서한 표지

루터가 반박을 하기 위해 '번역에 관한 서한 및 성자들의 중보기도 (Sendbrief vom Domeltschen und Fürbitte der Heiligen)'라는 제목으로 천주교회에 편지를 보내는데요. 위 서한에서 루터 본인도 '오직'이라는 단어는 원래 헬라어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은 하되 본인의 번역은 문제가 없다고 변호를 하는데요. 우선 '오직 (Allein)'이라는 단어는 온전히 기독교 교리와 일치하고 독일어로 번역할 시 '강조성' 또한 더하기에 읽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을 이끌기 쉽다는 점에서 이 단어를 억지로 채워 넣었다고 루터는 주장합니다.  이렇게 강한 어조로 루터가 반박하는 이유는 당시 천주교회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분석을 할 수 있는데요. 로마서 3장 28절의 '오직'이라는 단어가 원래는 없다는 것을 남용하여 천주교가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면 믿음 외에 '다른 부수적인 것들'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천주교가 말하는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백성들이 지불하는 '면죄부', '의무적인 십일조'를 뜻하는데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라는 어구를 씀으로서 일반 백성들이 천주교의 교리가 얼마나 '비양심적이고 반성경적'인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에 더해 루터는 천주교가 진심으로 창조주를 두려워하고 성경에 의거하여 '오직'이라는 단어를 지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반발로 '면죄부 판매금과 십일조'가 줄어들 테니 본인들 권력과 밥 그릇만 걱정하는 위선자들이라고 맹비난을 합니다. 

지금 21세기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는 '오직'이라는 단어는 독일어든 한국어든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루터가 처음 도입한 '오직 믿음으로'라는 어구가 성경에 적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여부가 16세기 당시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는 척도로 자리잡게 되는데요. 이 밖에 루터가 신약 선경을 번역할 때 사용했던 독일어는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기에 후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아우르는 '표준 독일어 (Hochdeutsch)' 설립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에게 동화로 친숙한 '그림 형제 (Brüder Grimm)'가 19세기에 '표준 독일어 사전'을 집필할 때 사용하였던 독일어가 바로 신약 성경을 번역한 루터의 독일어였고 '하이네, 칸트, 니체' 등 독어권의 수많은 철학자들과 문학도들은 이러한 이유로 루터를 심지어 '표준 독일어의 아버지'로 칭하지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루터의 위대함은 단지 이 인물의 양심과 명석함에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언어'가 사람과 사회에 얼마나 막대한 의미를 주는가를 일깨워준 점에 있다고 보는데요. 20세기 초반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의 대표 격으로 '우리말'을 없애려고 괜히 발악을 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문자열과 발음 기호로만 이루어진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말'에는 각 개인의 정서가 담겨져 있고 더 나아가 공통적으로 이 '말'을 쓰는 우리의 문화와 시대를 반영하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문자와 언어를 우리가 아무 제약 없이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