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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비엔나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11구 씸머링 / Simmering

오스트리아 빈을 구성하는 전체 23개의 구(Gemeindebezirk)들 중 제 '11구'에 해당하는 '머링(Simmering)'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을 알아봅시다.

씸머링 문양

수도 빈에서 남동쪽에 위치하고 상당히 큰 면적을 자랑하는 빈 11구 씸머링은 동쪽에는 빈 10구가, 북쪽으로는 빈 2구와 3구가 각각 놓여있습니다. '씸머링'이란 지역구의 명칭은 처음 11세기에 등장하는데 당시 오스트리아의 선조인 바벤베르크 영주들의 사유지로 활용되었지만 17세기 두 번에 걸친 오스만 튀르크 및 헝가리 왕국의 침공으로 온 지역이 폐허가 됩니다. 이후 복구를 위한 막대한 비용 충당을 못하자 빈 1구의 있는 '힘멜포어트 수도원'의 산하로 들어가지만 18세기 다시 빈 1구로부터 독립합니다. 그렇지만 침략의 폐허를 온전히 복구하기가 천문학적인 비용 및 면적이 너무 넓은 관계로 불가능해지는데요. 절반 가까이가 허허벌판이었던 씸머링은 공병 부대의 훈련지로 이런 이유에서 사용됩니다. 여타 지역구들과 마찬가지로 빈 11구는 과거 한때 총 3개의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위에 보이는 씸머링의 문양이 당시의 구역들을 상징하지요. 우선 위에서 오른쪽에 그려진 유니콘은 '카이저에버스도어프'라는 구역을 표현하는데 이 구역을 12세기부터 소유하였던 귀족 가문인 에버스도어프의 문장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게 구역의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란 단어가 명칭에 추가되지요. 문양에서 밑부분에 해당하는 물고기들은 '알번'이란 구역을 나타내는데 12세기부터 도나우 강에서 낚은 민물고기들을 통한 어업이 발달한 장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왼편에 그려진 삽화는 현재 빈 11구를 대표하는 '씸머링'이란 구역인데 씸머링의 첫 번째 철자인 S를 본떠서 만든 문양이지요. 17세기 이 구역 같은 경우 양조장이 상당히 발달하였기에 맥주 및 여러 증류주 산업이 이 구역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였습니다, 

가소메터 (좌), 빈 중앙 묘지 (우)

이 3개의 구역들은 19세기 중반 수도 빈에 편입되면서 씸머링을 대표로 하는 빈 11구가 탄생하는데요. 씸머링의 절반이 당시 공병 부대의 훈련소로 활용되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도시의 전력을 책임지기 위하여 가스 공업들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소메터(Gasometer)'라는 이름의 빈에서 가장 대규모로 기체 연료를 보관하는 가스 홀더가 이 때 생겼는데요. 총 4개의 홀더로 이루어진 가소메터는 외관 및 내부가 고상하기에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성당들에 더하여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가장 큰 묘지로 손꼽히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들이 묻혀있는 '빈 앙묘지 (Wiener Zentralfriedhof)' 또한 만들어졌기에 문화 및 관광적인 측면에서 빈 11구는 유명합니다. 경제적으로 빈에서 상당히 어려운 지역구임에도 불구하고 치안도 준수하고 물가 역시 빈에서 높은 편에 속하기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입니다.

씸머링(Simmering)
인구 100.000 명 (7위)
면적 23 km² (8위)
물가 상 (4위)
1인당 GDP 약 22.000 유로 (20위)
치안 중 (1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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