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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비엔나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23구 리징 / Liesing

리징 문양

전체 23개의 지역구로 분리된 빈에서 마지막 23번째에 해당하는 빈 23구 리징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알아봅시다. 리징은 비엔나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지역구로 북쪽에 빈 13구, 12구, 10구가 놓여있습니다. 과거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도시였던 리징은 총 8개의 독립적인 구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이 구역들은 각각 위의 문양에 삽화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맨 윗줄에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마우어', '인처스도어프', '칼크스부르크'란 구역들을 나타내고 가운데 줄에 그려진 삽화들은 오른쪽부터 '아츠거스도어프', '리징', '지벤히어텐'란 구역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맨 밑줄에 새겨진 그림 중 왼쪽은 '에얼라'란 구역을 오른쪽은 '로다운'이란 구역을 상징하는데요. 이런 구역들이 수도 빈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삽화들은 각각 이 구역의 대표 산업, 건축물 또는 영주의 문장을 나타냅니다. 과거의 리징은 슬라브 민족의 영토였지만 11세기 이 영토가 신성로마제국 황실로 헌사되면서 오스트리아령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리징이란 명칭은 '숲 속 개울'이란 슬라브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 현재까지도 도나우 강의 일부인 '리징 개울(Liesingbach)'이 빈 23구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리징은 경작지, 벽돌 생산지, 군사 요새 등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다른 지역구에 비하여 16세기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보트루바 성당 (좌), 로다운 관저 (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리징은 낙농업 및 여러 식품 업체를 중심으로 내세운 산업 지역으로 점차 변모하기 시작하는데요. 이에 더해서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과 빈을 대표하는 산맥인 '너발트(Wienerwald)'의 일부가 리징 면적의 3분의 1을 덮고 있기에 빈 시민들의 휴양지로도 활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역이 발전하자 한 때 리징을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수도로 세우려 하였지만 20세기 초·중반 독일 나치당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리징을 강제적으로 비엔나에 편입시켜 버립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편입된 리징을 재차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도시로 환부하려 하였지만 당시 리징을 지배하였던 소련에 의하여 부결되면서 비엔나의 공식적인 지역구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시기가 20세기 초·중반이었기에 빈 23구 리징은 여타 지역구들에 반하여 가장 늦게 빈에 통합된 지역구로 알려져 있지요. 면적 32 km²로 빈에서 상당히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빈 23구에는 현재 비너발트 숲 외에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프리츠 보트루바가 현대식으로 설계한 '트루바 성당(Wotrubakirche)'과 중세 시대 오스트리아의 선조인 바벤베르크 왕실의 관저로 활용되었던 '다운 관저 (Schloss Rodaun)'등이 위치해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빈 23구는 그렇게 이름난 지역은 아니지만 경제 상황 및 치안이 상대적으로 준수하고 물가 역시 높은 편에 속하지는 않기에 사람이 거주하기 위한 지역구로 부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리징(Liesing)
인구 110.450 명 (4위)
면적 32 km² (5위)
1인당 GDP 약 27.000유로 (8위)
물가 중 (13위)
치안 중 (1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