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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소식

<오스트리아 소식> 세바스치안 쿠르츠, 이대로 무너지나?

치적 및 외교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연방총리/수상(Bundeskanzler) 세바스찬 쿠르츠와 연방대통령(Bundespräsident)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쿠르츠 총리 (왼),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

 

국가 간 조약 체결권, 군사 통솔권 총리 및 장관의 임명/해임권이 연방 대통령에겐 있습니다만, 이는 단지 '명목상'에 불과합니다. 군사 통솔권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권한은 총리 또는 국회에서 국가위기 시에는 심지어 대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국 등 공식적인 '통령제'를 따르는 국가와 달리, '원내각제'인 오스트리아에선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리 및 권환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어,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일본의 천황과 동일하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보는 게 더욱 합당하다고 생각되네요.

세바스찬 쿠르츠의 일생을 잠깐 살펴보면 아주 이른 나이부터 정치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6년생인 쿠르츠 총리는 25세의 나이로 외교통합부 비서 실장을 시작으로, 27세 때 외교통합부 장관 및 당 대표,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엔 연방총리로 선출됩니다. 고작 27-28세의 나이로 정치가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봐야겠네요.

 

EU-정상회담에서 연설하는 쿠르츠 총리

 

전 집권 여당의 난민정책, 경기부양 정책 등을 날쌔게 비판했던 쿠르츠에 대한 초창기 여론은 꽤 훌륭했습니다. 거기에 젊은 나이와 훤칠한 외모까지 곁들여 대체적으로 전 집권 여당에 편에 있었던 젊은 여성들 마음까지 사로잡습니다. 그 당시 여론조사를 하면 과반수의 지지율을 보이곤 했죠.

하지만 2020년이 들어서고 쿠르츠 총리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냉각됩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으론 다음 4가지 이유로 간추릴 수 있다고 보는데요:

1. 나친 말 표현 
2. 도한 방역정책
3. 러 조기 예방 실패
4. 정 농단 연루

 


 


지나친 말 표현

 

물론 "건방지다", "예의가 없다"등의 여론도 없진 않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초장기 날쌘 비판으로 유명했던 쿠르츠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은 너그럽게 봐줬습니다. 하지만 이를 옹호하던 국민들도 있는 정이 다 떨어질 정도로 작년 7월에 했던 수위 높은 발언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작년 7월 EU 정상회담 때 예산관리 및 코로나 정책에 대한 쿠르츠 총리의 언변을 독일 <Zeit> 신문사는 지속적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비판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Zeit> 신문사에 쿠르츠 총리는 여러 번 불쾌감을 표출했죠.

 

오스트리아 여기자와 인터뷰하는 쿠르츠 총리

 

위 사진처럼 오스트리아 방송국과 실시간 인터뷰 중 <Zeit> 신문사의 기사를 다시 한번 인용하면서 여기자는 쿠르츠 총리의 심기를 건드리는데요. 이에 발끈한 총리는 기자한테 "독일 Zeit사 내용을 그대로 읊으시네요?" 라면서 "아니, 당신 뇌가 있을 것 아니에요 (Aber, Sie haben ja ein eigenes Hirn), 왜 그딴 질문을 하세요?" 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합니다.

졸지에 여기자는 쿠르츠한테 무뇌층 기레기로 낙인찍히는데요. 이를 생중계로 시청하던 국민들은 벙~ 찝니다. 그리고 국민들한테 "어쩜 저렇게 천박하냐, 사퇴해라!"란 말까지 듣습니다. 물론 다수의 오스트리아 국민들도 생각 없이 확대 해석한 <Zeit>사를 인용한 여기자도 잘했다고 보지는 않지만, 공식적인 석상과 생중계되는 인터뷰에서 한 나라의 수장이란 사람이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에 훨씬 더 강도 높은 비판을 했습니다.

(쿠르츠 총리의 뇌(?) 발언은 여러 언론과 예능에서 풍자되었죠 ㅎㅎ) 

 

과도한 방역정책

 

오스트리아에 수차례에 걸친 수위 높은 봉쇄 조치는 수많은 국민들의 실업으로 이어졌고, 특히나 전체 오스트리아 GDP의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문화/예술 및 관광사업은 국경 전면 폐쇄로 직격탄을 맞습니다.

 

1분기 전 비교 (옅은 파란색),   전년도 분기 비교 (짙은 파란색)

 

위에 도포를 보면 오스트리아는 20년 2분기 13% 경제 성장을 필두로 올해 1 분기까지 5% 성장입니다.
작년 경제 성장면에서 OECD 국가 중 선방한 우리나라에 반해 오스트리아는 굉장히 처참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고용노동청에서 발표한 작년 8월 자료가 이를 뒷받침해 주네요. 본문을 보자면:

 

오스트리아 고용노동청(AMS) 발표

 

"20년 4월부터 실업자 수는 감소 추세지만, 전년도 대비로는 월등히 높다. 20년 7월에만 383,951명이 신규 실업급여 신청을 하였고, 19년도 대비 10% 이상 국가 자격증 준비생이 줄었으며, 20년 7월 기준 구직자 수는 432,529명으로 전년도 대비 33%로 증가했다, 국가 전체 실업률로는 20년 7월 기준 대략 9.2%로 추이 된다 [...]"

 

그리고 작년 말에는 실업률이 10%가 넘었었습니다 ㅎㄷㄷ

이렇게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와중에도 쿠르츠 총리는 방역조치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는데요. 그렇다고 그에 걸맞은 대책 및 보상 또한 뚜렷하게 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소상공인, 문화/예술인, 관광업 종사자를 필두로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20년 1분기 기점으로 여론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테러 조기 예방 실패

 

작년 11월 초 저녁 빈 시내에서 누군가 산탄총으로 난사하고 있으니 자택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경찰청에서 긴급 통보가 왔었는데요. 범인은 바로:

 

비엔나 테러범 쿠이팀 페츨라이 (20)

 

북마케도니아 이민자 부모를 둔 IS에 가담한 20세 학생이었습니다. 다행히 경찰의 신속 대응으로 4명의 사상자로 테러범이 사살되면서 테러가 끝났는데요.
(경찰이 5분만 늦었으면 최소 수십 명은 더 죽었다고 하네요...)

이렇게만 마무리됐으면 쿠르츠는 영웅이 됐을 텐데, 그 후 발표된 경찰청 자료가 이걸 방해합니다.
테러범이 전과자에다가 심지어 동일 범죄로 19년 4월에 22개월 징역형이 내려졌었다고 하는데요. 시리아 IS 본부에 가담하겠다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시리아행 비행기 표 등등이 증거 자료였다고 합니다.

사회 초년생과 심신 미약이라는 빌미로 초기 석방된 테러범은 그 후 지속적인 관찰대상에 포함해야 된다고 경찰청에서 보고를 올렸지만 이를 내무부 장관과 쿠르츠 총리는 묵과합니다 (단지 여권 압수로만 끝난다고 그러니 뭐 말 다 했죠..)

아무리 여권이 압수됐다 하더라도 오스트리아 및 EU 국가 내에서는 자유로이 활동 가능했던 테러범은 작년 7월 슬로바키에서 총탄을 구매합니다. 이를 수상쩍게 여겼던 슬로바키아 당국은 즉석에서 오스트리아 정부로 이에 관해 보고를 합니다만, 오스트리아 내무부와 총리는 이 또한 묵과하지요 (아니 어떻게 동일 범죄 전과자를 내버려 두는지 참...)

이를 두고 야당은 총리와 내무부 장관이 즉각 사퇴해야 된다며 방대한 반대 여론을 조성합니다. 

 

국정 농단 연루

아미 이 이유가 쿠르츠 총리 여론 하락세에 화룡점정을 찍은 사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오스트리아 관례로 만약 A당이 집권하게 되면 다른 B당 하나를 협력당으로 선정할 수 있는데, 이를 '합정당(Koalition)'이라고 부릅니다. 2017년 국회 선거(Nationalratswahl)에서 당선된 국민당(ÖVP) 대표 쿠르츠는 슈트라헤가 이끄는 자유당(FPÖ)을 연합정당으로 선정하는데요.

 

자유당 대표 슈트라헤

 

17년 당시 중도/보수인 국민당이 극우성을 띤 자유당을 선정했다고 국민들 사이에선 '새로운 나치당'이 탄생하는 거 아니냐며 말이 많았습니다만 사람들은 설마 그러겠냐며 쿠르츠를 신뢰했었죠.
하지만 나치당 대신 국정농당(?)이 탄생합니다.

 

19년 당시 몰래 촬영한 밀담장면: 왼쪽부터 구데누스, 재벌조카녀, 슈트라헤

 

간단히 설명하자면 19년 스페인 이비사섬 별장에서 당시 연합정당 대표 슈트라헤와 자유당 임원 구데누스 그리고 러시아 정부 정격유착 재벌 조카녀 이렇게 3명이 밀담하는 장면을 누가 몰래 촬영한 영상을 독일 <Spiegel>과 <Süddeutsche Zeitung> 신문사에 밀고합니다.

밀담 영상에서 슈트라헤가 재벌 조카녀가 몸담고 있는 러시아 재벌회사가 오스트리아 내 '도로 건설'이란 빌미로 약 3억 유로 (4000억 원)를 투자하면 그 자금을 슈트라헤가 빼돌려 자유당 홍보와 오스트리아 대표 일간지 <Kronen Zeitung>을 매입한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또한 자신이 매입한 <Kronen Zeitung> 일간지로 언론을 조작 및 장악해서 본인(슈튜라헤)한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여, 다음 총선 때 유리한 고점을 서기 위해 계획을 꾸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와 연루된 재벌회사는 오스트리아 내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껀덕지(?)가 생긴 동시에 친 동유럽적인 정책, 즉 '부패한 사회주의' 또한 보상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발각되자 슈트라헤는 정치에서 물러납니다. 쿠르츠 총리는 자신과 국민당(ÖVP)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국회에서 불신임 투표가 가결되어 연합정당은 해체가 되고 쿠르츠 본인도 사임합니다. 그 후 앞당겨서 치러진 총선 때 국민당이 다시 승리하면서 당 대표인 쿠르츠가 정권에 총리로 다시 복귀합니다. 아마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쿠르츠 주장을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5월 이비사 사건 특검에서 쿠르츠 총리 주장이 허위진술이라는 의혹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공기업들과 담합하여 세금 '과잉투자'했다는 의혹 또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스트리아 시사/경제지 여론조사

 

이로 인해 47%의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여론조사에서 쿠르츠 사퇴에 찬성하고 쿠르츠가 당 대표인 국민당(ÖVP) 또한 지지율이 하락세입니다.

 

올 5월 여론조사: 집권 여당 (ÖVP)과 야당(SPÖ)의 지지율 불과 1% 격차  

 

이런 추세라면 야당이 집권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쿠르츠 총리와 국민당(ÖVP)은 다음 총선까지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