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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비엔나 소시지에 대해 알아보자

<오스트리아 정보>

한국에서 주로 아이들 간식 및 반찬으로 많이 요리하는 재료 중 하나인 '엔나 세지'. 주로 연분홍색의 작고 탱글탱글한 모양인 한국의 비엔나소시지는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MSG가 듬뿍 들어가 있어 성인들도 자주 즐겨 먹습니다. 맛이 자극적이라 1개 먹을 때마다 수명이 1분씩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우리의 '비엔나소시지', MSG의 노예들이라 '한 번도 안 먹어본 자'는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자'는 없다는 정겨운 우리의 '비엔나소시지'. 당연히 이름에서부터 이런 '수명 단축 맛'의 소시지가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누구나 알 텐데요. 그렇지만 실제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현지에서 먹는 '비엔나소시지'는 사뭇 다릅니다.

비너 부어스트

독일어로 '비엔나 소세지'는 '비너 부어스트 (Wiener Wurst)' 또는 줄여서 '비너 (Wiener)'로도 불립니다. 이상하게도 한국의 비엔나소시지는 위 사진처럼 오스트리아에 있는 소시지랑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인간 팔뚝만 한 두께의 비너 부어스트는 한 입에 먹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겉 표피가 심지어 건조하고 딱딱해서 일반 식칼로 자르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식료품 또는 정육점에서 기계로 얇게 먹을 만큼 손님한테 잘라주지요. 오스트리아 전통 빵인 '셈멜(Semmel)'안에다 곁들여 먹는 비너 부어스트는 맛부터가 깊은 MSG 맛의 한국식 비엔나소시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퍽퍽하고 짭조름합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이탈리아 '살라미 소시지'의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리고 못생긴 '비너 부어스트'와 더불어 '작은 비엔나 소시지'로 불리는 '비너 '뷔어스톈 (Wiener Würstchen)' 또는 '뷔어스텔 (Würstel)'도 오스트리아 소시지를 대표하는데요.

 

뷔어스텔

뷔어스텔은 순수 돼지고기만 또는 돼지/소고기 합친 고기를 다지어서 포장재에 넣고 뜨거운 물에 삶아 가공하는 방법으로 주로 만들어지는데요. 외적으로만 판단하였을 경우 오히려 길쭉하게 늘려 뜨려 놓은 뷔어스텔이 한국식 비엔나소시지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여기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는 이 '뷔어스텔'이란 단어는 사전적인 정의라기 보단 오스트리아 사투리의 개념인데요. '비너 뷔어스톈' 또한 독일식 독일어라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주 쓰이지는 않습니다. 이 대신 신기하게도 '랑크푸어터 (Frankfurter)', 즉 '프랑크프루트 소시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데요. 오스트리아 소시지를 어째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란 도시명을 본떠서 불리게 되었는지에는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비엔나 소시지의 아버지 란너 (Johann Gerog Lahner)

19세기 초반 독일 바이에른 지방 출신의 '란너'라는 인물은 어렸을 적 부모를 따라 수공업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탓에 부모는 친자 란너를 보육원에 맡기고 어느 정육사 부부에게 입양이 되어 자신의 양부모와 마찬가지로 '정육사'에 길로 들어섭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정육 기술을 배운 젊은 란너는 초창기 정육 기술 다방면에서 특출 난 실력을 뽐내었지만 '인맥'에서는 불행이 따랐습니다. 란너의 실력을 질투했던 동료 정육사들은 프랑크푸르트 출신도 아니고 심지어 '입양아'라는 소문을 퍼뜨려 사람들에게 란너에 대한 악질적인 선입견을 심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회의감을 느낀 란너는 만사를 재쳐두고 여행을 떠나는데요. 독일을 가로질러 배를 타고 도나우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휴식 겸 정체하던 중 유연하게 란너는 한 귀족 부인을 만납니다. 물론 회의감에 떠밀려 오긴 하였지만 금전이 필요했던 란너는 귀족 부인과 대화 후 귀족 부인의 토지에서 막노동 및 수공업자로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수년 후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마당에서 삽질(?)을 하던 란너는 귀족 부인의 전속 요리사가 병으로 일시적으로 일을 쉬게 되자 요리를 할 줄 아는 라너가 대타로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요. 이때 본인의 정육 기술을 살려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합친 다진 고기를 끓는 물에 삶은 뒤 돼지 창자에 담아 훈제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음식을 란너는 귀족 부인에게 대접을 하고 이런 특이한 소시지를 처음 먹어 본 귀족 부인은 이 맛에 감탄을 하고 란너에게 이 음식을 대중에게 팔아 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귀족 부인은 란너를 금전적으로 지원하여 라너 본인의 정육점을 빈에서 열게 되지요. 귀족 부인처럼 비엔나 사람들은 이 새로운 소시지에 극찬을 보내고 란너의 정육점은 날로 번성합니다. 란너가 프랑크푸르트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이 란너의 손에 새롭게 탄생 한 소시지를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로 부르기 시작했고 점점 사람들 입을 타고 본인 정육 기술의 원천지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순수 소고기 아니면 순수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만 있었는데요 하지만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합친 새로운 개념의 소시지를 맛본 독일 사람들도 감탄을 하고 란너는 본인의 소시지를 프랑크푸르트로 역수출하는 상황까지 펼쳐집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이름 난 정육사로 재탄생하고 본인의 새로운 음식개발로 본인을 깎아내렸던 전 프랑크푸르트 동료들의 코를 란너는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며 '뷔어스텔'의 시초가 됩니다.

 

셈멜빵과 굴라쉬 소스에 곁들인 삶은 뷔어스텔 (Würstel mit Saft)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 먼 훗날 란너 소시지는 전 인류 과학의 결정체이자 마법의 가루인 '아질산나트륨과 MSG'를 만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을 MSG 노예로 만든 오스트리아 '비엔나소시지'가 탄생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