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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이야기/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 정보> 오스트리아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들 1

<오스트리아 정보>

사소하지만 오스트리아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 '첫 번째 편'

 

  우편엽서의 시작

 

어딘가 여행 갔을 때 우리 모두 한 번씩은 친구나 가족들한테 사진 또는 그림이 삽화되어 있는 '엽서 한 번 씩은 누구나 써 봤을 겁니다.

비엔나 우편엽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옆서와는 다르게 처음 '엽서'라는 개념이 생겼던 18세기 중반 그 당시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엽서'보다는 '전단지'의 개념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이를 최초로 취급 및 발송했던 프랑스 파리의 한 개인 우편배송업체인 'Petite Post (작은 우체국)'은 엽서를 배송할 당시 동봉된 채가 아니라 만인이 볼 수 있도록 만든 '홍보물'로 배송을 합니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져 있고 유치하다는 이유로 '엽서'는 '공식 우편물'로는 포함되지 않았는데요.

 

오스트리아의 19세기 통신 엽서 (Correspondenzkarte)

그로부터 딱 1세기 뒤인 19세기 중반에 오스트리아의 우체국에서 '통신 엽서'란 이름으로 전면에 그림이나 사진이 찍혀있는 엽서에 우표나 도장을 찍어 '동봉'된 채 한 개인한테 배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가 세계 최초로 엽서를 '공식적인 우편물'로 취급한 일인데요. 후에 일반 편지보다 엽서를 사람들이 애용하니 점점 유행을 타 세계 각국에서 이를 공식적인 우편물인 '우편엽서'로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오래된 동물원

 

18세기 중반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테레지아 대군주의 남편인 '프란츠 1세 (Franz Stephan von Lothringen)'는 자신의 황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사냥터'를 지으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 만들기가 애매하여 '동물 수집소 (Menagerie)'를 대신 짓게 합니다.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는 이 동물 수집소를 당시 여러 귀족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데요.

프란츠 1세 황제의 동물 수집소를 즐기는 귀족들

처음 이 '동물 수집소'에 들어온 동물들은 '인도코끼리'에 더불어 '표범과 캥거루'등 주로 아프리카와 동양에서 온 이색적인 동물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캥거루가 뛰어놀았네?)

그 후 벌어진 수많은 전쟁들을 겪었던 오스트리아는 수집소의 있는 동물들이 전쟁을 이 악물고 견디고 견디어 후손을 대대손손 남긴 덕분에 지속적으로 이 수집소를 잘 관리한 덕에 폐허가 되어도 금방 재복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쇤브룬 동물원 로고

이런 훌륭한 관리체계로 이 '동물 수집소'는 계속 발전하여 현재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동물원인 '쇤브룬 동물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

 

1901년 세계 최초로 '엑스레이'를 발견한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Wilhelm Röntgen)의 수상을 필두로 현재까지 '의학, 물리, 화학, 경제, 문학, 평화' 분야에서 약 700번이 넘게 노벨상이 수상되었는데요.

 

18년 기준 국적별 수상자 수

현재까지 혈액형을 발견한 '란트슈타이너 (Karl Landsteiner)',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유명한 '슈뢰딩거 (Erwin Schrödinger)' 등으로 20명 조금 넘는 수상자를 오스트리아는 배출하였습니다.

 

이는 명목상 세계 약 10위권 수준으로 400명 가까이 되는 수상자가 있는 미국이랑은 물론 차이가 크지만 '인구수 대비'로 계산했을 경우 오스트리아는 '독일,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수의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이는 대략 '인구수 대비' 세계 5위안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사 호칭

 

한국은 중 ·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하는 반면에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학교에서는 '교수(Professor)'라고 호칭을 합니다. 왜 대학도 아니고 일반학교의 교사를 학생들이 '교수'라고 칭할까요?

여기엔 웃긴 일화가 하나 엵혀 있는데요. 이 일화의 중심엔 바로 이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프란츠 요세프 황제 (Kaiser Franz Joseph)

19세기 중후반 프란츠 요세프 황제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루돌프 프란츠 황태자 (Rudolf, Kronprinz von Österreich und Ungarn)'인데요. 이 황태자를 가르쳤던 황실 교사들은 황태자가 공부를 하도 지지리도 못해서 가르칠 것이 많아 골치가 아팠다고 합니다.

또한 그 당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일반교사들의 급여가 상당이 낮았다고 하는데요. 가뜩이나 박봉에 가르치는 애까지 빡대가리(?)니 월급에 비해 노동력이 너무 많이 투자되자 이에 황실 교사들은 황제한테 '월급 인상'을 요구합니다.

이 요구를 황제는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면서 거절하고 (원래 있는 놈들이 더함...) 이에 상처 받은 교사들은 반기를 들려 하자 황제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바로 전국의 '김나지움 교사 (Gymnasiallehrer)', 즉, 일반 중 · 고등학교 교사의 호칭을 '교사 (Lehrer)'에서 '교수 (Professor)'로 승격시킨다는 제안이었는데요.

이 당시 최고의 호칭 중에 하나였던 '교수 타이틀'을 일반 교사들이 가질 수 있다는 기쁨에 혹해 돈 대신 '명예'를 택합니다. 그렇게 일반 교사들은 '교수'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 풍습이 20세기에 공화국이 된 오스트리아에 그대로 전해져 내려와 마치 '공식 호칭'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거기다 급여 인상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