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정보>
유럽은 현재 유로 2020의 열기로 한창 뜨겁습니다. 오스트리아도 예외는 아닌데요. 2016년 조별예선 꼴찌로 탈락했던 오스트리아는 2020년 C조의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마케도니아'와 경쟁하며 결선 진출을 노렸습니다. 현재 피파랭킹 23위인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우리나라보다 높지??) 축구 '실력'면에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축구 '역사'만큼은 나름 조예가 깊습니다.
<Die Cricketer>,
축구의 시작을 알리다
스키 다음으로 오스트리아 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스포츠인 축구는 그 역사가 무려 오스트리아에선 100년이 족히 넘습니다.
1890년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은행가 가문 로스차일드 (Rothschild)의 정원을 위해 일했던 몇몇의 영국인 정원사들은 쉬는 시간에 틈틈이 '둥근 가죽공'을 차면서 여가를 즐겼다고 하는데요. 이를 처음 본 비엔나 사람들은 이 장면에 열광합니다.
그리고 2년 후, 1892년에 '디 크리켓터 (Die Cricketer)'란 이름으로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영국인들로 구성된 축구팀이 빈에서 출범합니다. '디 크리켓터'에 힘입어 축구라는 스포츠는 빈에서 출발해 점점 오스트리아 전역으로 신속하게 입지를 넓혀가는데요.
이는 1904년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 'Österreichischer Fußball-Bund'의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ÖFB는 세계축구협회(FIFA)에 정식 회원국으로 등록되지요. 1919년 '영국식 축구 체계'를 처음 도입한 오스트리아 축구팀은 유럽에서 영국과 더불어 20세기 초반에 '축구 강국' 열반에 오릅니다.
<Das Wunderteam>,
그리고 응답하라 1954
20세기 초반 영국식 축구 체계가 점차 유럽 내에서 무르익어갈 때,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세계대회에서 항상 고무적인 성적을 거뒀습니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표단이 있었는데요.
비록 국가대표 별명에 불과하지만 '기적의 대표단'이라 불렸단 '다스 분더팀(Das Wunderteam)'. 구단장 '후고 마이쓸(Hugo Meißl)이 이끄는 이 대표단은 1931년부터 1933년까지, 유일한 잉글랜드와의 4:3 패배 외에 3년 동안 국가대항전에서 단 한 번의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을 1931년에만 연속 두 번 <5:0>, <6: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로 박살 낸 오스트리아 대표단은 3년 동안 이탈리아, 스웨덴, 체코, 벨기에, 헝가리 등을 지속적으로 이기고 1933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4:0>란 또한 압도적인 골 차이로 승리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1932년에 열린 유럽 국가대항전에서 (유로 1932로 불러야 될런지?) 오스트리아 대표단은 우승 또한 거머쥐는데요. 하지만 유로 1932(?) 우승이라는 정점을 찍고 '다스 분더팀'의 주축 선수들이 은퇴 및 세계 2차 대전 발발로 오스트리아 축구계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침체기에 빠진 오스트리아 축구를 구원해 준 신예 선수들이 나왔는데요.
'하펠과 오크비르크'
이 두 신예 선수들을 앞세우고 나머지는 '다스 분더팀'에 남아있던 선수들로 구성된 새로운 대표단은 1954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4강 신화를 기록하며 대회를 3위로 마감하는데요. 이 월드컵 또한 유럽 국가대항전 우승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축구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명성이 워낙 높다 보니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1931년에 완공한 'Praterstadion'이라는 종합 운동경기장을 '하펠' 선수가 사망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 (Ernst-Happel-Stadion)'이라는 명칭으로 심지어 변경까지 하지요.
용의 머리로 시작하고
뱀의 꼬리로 끝나다
60년대에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나날로 뜨거워집니다. 이를 증명하듯이, 1960년에 열린 '오스트리아 vs. 스페인' 경기에서 무려 9만 명이 넘는 오스트리아 관객이 경기장에 모였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에서 역대 최고의 관객 수로 뽑히는데요.
하지만 국가대표단이 이에 부응하지 못합니다.
월드컵 및 유로 본선 연속 탈락
피파랭킹 100위권 근접
위에 두 가지 이유로 오스트리아 축구대표팀은 매번 오스트리아 국민들한테 실망감만 안겨줍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몇몇 독일 같은 축구 강대국들을 꺾는 등 '기적의 모습'을 보여주긴 하였지만 이는 20세기 초반에 보여주었던 오스트리아 국가대표에 비하면 몹시 미미했지요.
그리고 1982년에 터졌던
승부 조작 사건
1982년 스페인 히온에서 치러진 월드컵 조별 예선전에서 벌어진 사건인데요. '알제리, 칠레, 독일, 오스트리아', 이렇게 한 조에서 1라운드 경합을 펼치던 도 중, 하루 앞에 경기를 치른 '알제리와 칠레전'의 결과를 알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서로 마지막 날 경기 중 암묵적인 약속을 합니다.
만약 독일이 1골 차이로 오스트리아를 이기면 독일도 2라운드에 진출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미 2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은 오스트리아는 독일이 경기중 1골을 넣자마자 서로 패스 연습만 합니다.
이를 두고 세계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거세게 비난하였고 또한 희망을 가지고 응원하던 오스트리아 국민들 가슴에 이 사건으로 대표단은 대못을 박습니다.
(이 이후로 월드컵에선 조별예선 마지막 두 경기를 무조건 동시간에 진행되도록 규정이 바뀌었죠.)
이 외에도 '오스트리아 축구 협회 부패', '축구 약소국들 상대로 패배' 등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자국 축구대표단에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스트리아의 축구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용두사미'
이 단어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간혹 가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있는 오스트리아의 파파 할아버지들이 큰 기대를 가지긴 합니다만, 현 대표단이 개똥 싸는(?) 모습을 보시고선 바로 우십니다.
베테랑 수비 및 중앙 미드필더인 '알라바'를 필두로 처음 국가대항전 대표로 뽑힌 오스트리아의 골키퍼 '바흐만'으로 구성된 현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비록 유로 2020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분전하다 패배하긴 하였지만 상당히 팽팽한 경기였습니다. 과연 다음 '유로 2024'서는 지난 역사의 수모를 씻어내고 과거의 영광 또한 재현할 수 있을지에 저의 관심이 쏠리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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